
국내 5대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일제히 임기 만료를 맞는다. 주요 은행들이 올해 상반기 일제히 견조한 이익을 시현한 가운데 그간의 경영실적, 내부통제 실천 여부 등이 각 은행 CEO의 연임을 좌우할 요소로 거론된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내년 3월 21일 임기가 만료된다. 이 행장은 2022년 1월 임기 2년의 행장에 선임된 후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취임 초기인 지난해 11월 임기 1년을 추가로 부여받았다. 당시 양 회장은 CEO 임기만료를 앞둔 계열사 9곳 중 6곳의 CEO를 교체했지만 이 행장엔 1년 더 행장직을 맡겼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 1조5059억원의 순익을 냈다. 전년 동기 19.0% 급감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행장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2조8620억원)을 전년 동기 대비 14.9% 끌어올리는 등 실적 개선에 기여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KB금융의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홍콩 ELS 사태 발생에 따른 금융소비자보호 미흡 및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KB뱅크)의 경영정상화 지연 등에 대한 책임을 이 행장에게 물을지도 관심이다. 그나마 지난해 1733억원이었던 KB뱅크의 순손실 규모를 올해 상반기(-579억원) 줄인 점은 이 행장의 성과로 볼 여지도 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 23일까지로 8개월가량 남았다. 무엇보다도 정 행장은 순익 규모를 끌어올린 점에 대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올해 상반기 신한은행은 2조535억원의 순익을 시현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2% 증가한 규모다. 2위 하나은행 대비 3026억원이나 많은 수준으로 5대 은행 중 단연 1등이다. 특히 대기업(전년 동기 대비 26.7% 증가) 여신 수요 등을 크게 늘린 영향 등으로 1년 새 기업대출이 9.9%나 늘었다. 하나은행은 상황이 다소 복잡하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의 임기는 올해 연말,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끝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함 회장의 연임 여부가 이 행장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미흡한 내부통제가 연임의 악재로 작용할 거란 관측도 있다. 우선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의 연임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협은행은 올해 상반기 1조2667억원의 순익을 올리며 선방했다. 다만 잊을만 하면 터지는 배임·횡령 사고가 이 행장 연임에 부정적 여론을 키운다. 올해 들어서만 농협은행에선 지난 3월 109억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사고를 비롯해 5월 51억원 규모의 공문서 위조 및 업무상 배임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금융 사고를 낸 계열사 CEO의 연임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데다, 농협은행에서 ‘3연임’에 성공했던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2017년 12월부터 2020년 3월)을 제외하곤 두 차례 이상 임기를 수행한 행장이 없었다는 점도 이 행장의 연임이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의 근거다.
연말 임기 만료를 맞는 조병규 우리은행장도 내부통제 부문에서 낙제점을 피하기 어렵다. 영업력만 보면 그간 은행 실적을 키운 데 기여한 바가 적잖다.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1조6735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문제는 툭하면 터지는 대형 금융사고다. 한 예로 지난 6월엔 경남 김해시 소재 우리은행 지점에서 한 직원이 은행 서류를 조작해 100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한편 지난해 금융당국이 제시한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따르면 은행들은 CEO 임기가 만료되기 최소 3개월 전부터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은행권에선 이르면 올해 3분기부터 차기 CEO 선임을 위한 절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오현승 기자 hsoh@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