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펫 2.0 시대’다.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 불린 존재들이 마당에서 실내로 들어온 것이 1.0 시대였다면, 이제는 동물이라는 구분마저 사라진 그들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인간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시대가 도래한 것. 이 같은 변화를 담은 포럼이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스코필드홀에서 열렸다. 서울대 수의대와 생활과학대가 공동으로 준비한 융합포럼 ‘반려동물 2.0, 반려동물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다.
이날 포럼에는 교수, 재학생, 반려동물 산업계 종사자 등 60명이 모였다. 반려인으로 유명한 김무열 배우도 참가해 “반려동물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는 가족”이라며 “이번 포럼이 단순 학술교류를 넘어 반려가족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김민수 서울대 수의대 교무부학장은 “수의대와 생과대가 반려동물을 주제로 공동세션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고, 이유리 생과대 학장도 환영사를 통해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학과지만 반려동물을 주제로 상당한 학문적 교집합을 발견했다. 동물과 사람의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융합포럼”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 이학범 데일리벳 대표 “정부가 미는 펫 산업, 성장 가능성↑”
서울대 수의과 04학번 출신 수의사이자 수의사 신문 데일리벳의 수장인 이학범 대표는 ‘반려동물 시장 현황과 미래’라는 주제로 포럼의 문을 열었다. 그는 “펫 산업이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지만 정작 국내 반려동물 및 반려인구의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고 짚었다. 주민등록/말소를 통해 집계가 되는 사람과 달리 동물등록제는 개만 의무사항인데다 말소 신고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개인적으로는 전체 국민 중 반려인구의 비중은 20%로 본다고 밝힌 이 대표는 향후 고양이 반려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급증한 반려묘 비중 등 국내외 통계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며 반려묘 관련 산업의 부상을 예견했다.
펫산업의 시장규모도 조사단체에 따라 제각각인 상황에서 이 대표는 현재 시장규모는 4조5000억원으로 보고 있으며 펫푸드(33%) 의료(31%) 용품(20%) 서비스(10%) 순으로 구성된다는 자료도 덧붙였다. 그는 “저출산·고령화·미혼인구 및 1인가구 증가로 반려동물의 숫자가 늘고 정부 차원에서 펫산업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면서도 “최근 경기침체와 규제강화는 변수”라고 짚었다.
◆ 이신혜 포들러스 대표 “AI 익숙한 Z세대, 반려생활 바꾼다”
반려동물 미용실 타깃 고객관계관리(CRM) 스타트업 포들러스를 운영하는 이신혜 대표는 ‘온라인 플랫폼 기반 반려동물 서비스 산업 개발’을 주제로 강단에 섰다.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할수록 펫 산업도 그들의 니즈에 맞춰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는 이신혜 대표는 “지금도 전체 반려동물 용품 구입처의 70%를 차지하는 온라인몰의 영향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며,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Z세대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펫 동반 여행 산업도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다.
아울러 펫 산업 종사자들은 인공지능(AI)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활용이 되고 있는 SK텔레콤의 AI 기반 반려동물 영상 진단 보조서비스 ‘엑스칼리버’, AI 기반으로 반려동물 눈과 피부 체크 기술을 제공하는 ‘에이아이포펫’, 그가 운영하는 포들러스 등을 예시로 든 이 대표는 “고객관리, 예약관리, 매출관리 같은 단순 업무를 돕는 AI가 펫 산업 곳곳에 적용 중이며 앞으로 그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경민 아동가족학과 교수 “노인 반려인구 증가… 관련 연구 필요”
‘노년기 삶과 반려동물’을 주제로 발표한 김경민 생과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맞춰 노인 반려인구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는 해외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반려동물을 5년 이상 키운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과 비교해 인지기능 감소폭이 완만했다. 또 반려견과의 산책이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됐다는 결과도 전하며 현재 해외에서 다양하게 진행 중인 동물기반 중재 프로그램이 국내에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했다.
김 교수는 “여러 논문에 따르면 실제 자녀보다 훈육 난이도가 높지 않은 반려동물에게 자식보다도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다만 긍정적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의 죽음 등 상실에 따른 슬픔, 양육비용, 반려동물 돌봄으로 본인 건강을 뒷전에 두는 것 등의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도 있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반려동물의 존재가 노인의 요양시설 이주를 망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한 김 교수는 특히 국내 대부분 요양시설이 반려동물 동반 입소가 불가능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그는 “펫 산업계에서 반려동물 관련 데이터는 중요시하지만 반려인에 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미국 등 해외에서 노년층과 반려동물 관련 연구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도 이제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세은 수의과대 교수 “반려동물도 삶의 질 따져야”
김세은 수의과 임상부 교수는 ‘노령 반려동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맞춤케어’라는 큰 주제 아래 구강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려동물의 ‘노령’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개는 전체 수명의 마지막 25%, 고양이는 10세 이상이라고 미국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한 김세은 교수는 사람처럼 반려동물도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반려동물의 삶의 질을 따지는 7가지 요소(H5M2)가 있다. 밥은 잘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활동량은 충분한지 등을 따져 반려인이 직접 점수를 낼 수 있는데 70점 만점에 30점 이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해당 7가지 기준 중 5가지가 구강과 관련됐다며 반려동물의 주요 구강 질환을 소개하고 증상 확인법, 예방법, 관리법 등을 소개했다. 특히 실제 반려 중인 강아지의 양치법을 영상을 통해 전하며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김 교수는 “반려견의 경우 사람과 구강 구조가 달라서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큰 불편함을 겪는다”며 세심한 관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유현주 식품영양학과 교수 “펫 영양정보, 보호자가 직접 챙겨야”
유현주 식품영학과 교수는 ‘반려동물의 영양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단에 섰다. 반려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6대 영양소가 중요하다고 밝힌 유 교수는 반려동물이 아무런 활동 없이 쉬고 있는 상황의 에너지 필요양인 ‘휴지기에너지요구량(RER)’에 다양한 계수를 적용해서 얻을 수 있는 ‘일일에너지요구량(DER)’의 계산법을 소개했다. 청중은 계산법을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
유 교수는 “반려동물 먹거리의 비중은 주식 90%, 간식 및 기타음식 10%가 적당하다. 먹이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반려인도 있지만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건 그릇된 관념”이라고 강조하며 “사료를 고를 때는 영양성분표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반려동물 사료영양표준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영양학 교수로서 반려동물 사료 시장의 미래를 전망한 유 교수는 “고양이 중심의 습식사료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사료도 마찬가지”라며 “보존제가 들어가지 않는 냉동 및 동결사료, 기능성 사료, 처방식 시장도 유망해보인다”고 전했다.

유민옥 수의과대 교수 “동물병원 찾는 이유… 아파서→ 예방 위해”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담당하는 유민옥 수의내과학 임상조 교수는 ‘반려동물 건강 검진 필요성’을 주제로 반려생활의 변화를 짚었다. 유 교수는 “과거 동물병원은 동물이 아플 때 방문하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아프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찾는다는 인식의 변화가 이뤄진 것 같다”며 “반려인도 고가의 비용이 들더라도 기꺼이 동물병원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반려인들의 인식 변화 속에 동물병원의 건강 검진 프로그램과 세미나도 다양해지고 있다. 유 교수는 “사람과 달리 반려동물은 어디가 아픈지 말도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아픈 것을 숨기려는 습성이 있다”며 “반려동물의 질병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기가 어렵다”고 반려동물 건강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건강 검진을 통해 조기에 질병을 파악하고 비교적 쉽고 빠르게 병을 완치한 사례를 소개한 유 교수는 “반려동물의 건강 검진은 기본 연 1회, 6~10세 이상은 연 2회를 추천한다”며 “사람처럼 동물도 건강 검진이 일상화 되어 데이터가 쌓이면 처방식 등 다양한 펫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약 4시간 동안 진행된 포럼을 청강한 우주연(서울대 소비자학과 2학년) 학생은 “반려견과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관심 있게 들었다. 우리 강아지도 천식으로 고생 중이라 건강 검진의 필요성을 새삼 느꼈고, 영양학적으로도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됐다”며 “아울러 라이프스타일에서 ‘소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인데 반려생활도 마찬가지임을 실감했다. 소비자학과 학생으로서 관련 연구에 흥미가 생겼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