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분기 우리 경제가 역성장 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거시경제 정책의 양대축인 통화·재정정책이 사실상 올스톱 됐다. 미국발 관세전쟁의 강도가 예상보다 더 세지는 데다 원·달러 환율 불안으로 기준금리 인하도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지만 경기 침체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산불 피해 복구(3조2000억원) ▲통상·AI 산업 경쟁력 강화(4조4000억원) ▲민생 지원(4조3000억원) 등 12조2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추경안을 지난 18일 의결했다. 이번 추경은 내수 소비 진작이나 투자 확대보다는 산불 피해 복구와 산업 안보 대응, 소상공인 피해 보전 등 피해 회복 성격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돈 풀기가 아니라 시급한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정 투입이라는 취지다. 최근 정치적 혼란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 등 통상 위기가 이미 본격화한 상황에서 재정 정책이 늦게 발표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기에 정부가 이번 추경을 편성하면서 국가 채무가 6조원 증가했다.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는 900조원에 육박한다. 대내외 악재에 비춰보면 이번 추경안의 규모로는 하반기 경기 부진을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초 정부의 전망은 1% 중반대였다”며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의 성장세가 나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상당 폭의 하방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게다가 미국발 관세 충격이 있어 소비나 기업 심리가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7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성장률이 크게 낮아지는 상황”이라며 “한국은 관세 효과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1분기 정치적 불확실성이 생각보다 오래돼 성장 폭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12조원 추경 시 한 0.1%포인트 정도 경제를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경기가 이렇게 나빠질 때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만으론 대응하긴 어려운 만큼 양쪽이 어느 정도 공조를 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장률이 낮아졌을 때 부양책을 통해서 경제성장률을 올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전 세계가 성장률이 낮아지고 무역이 안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혼자서만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가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 눈높이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0%대로 관측한 해외 기관도 나왔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주요 국제기구와 글로벌 투자은행(IB)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 성장률을 2.0%에서 1.2%로 대폭 하향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골드만삭스는 1.5%로,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1.6%로 각각 전망치를 낮췄다. 한은도 종전 1.5%로 제시한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전망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