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사먹기 겁나요”… 외식물가 5년새 25%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의 1.5배 달해
김밥 38%·햄버거 37% 등
20% 이상 오른 품목만 30개
식자재비·인건비 상승 영향
“내수 살려야 인상압박 탈피”

“요즘은 김밥 한 줄도 맘 편히 못 사 먹겠어요. 점심에 밥 한 끼 먹고, 회식 몇 번 하면 월급이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서울 강남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최근 ‘점심값 공포’를 실감하고 있다. 매일 점심을 사 먹고, 어쩌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까지 겹치면 월 생활비의 절반 가까이가 식비로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대에 머무는 사이, 외식 중심의 먹거리 물가는 20% 넘게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점심 메뉴들도 가격이 줄줄이 오르며, 이른바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 체감되고 있다.

 

1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0년 외식 부문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지난달 지수는 124.56으로 약 25%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6% 오른 것과 비교하면 외식 물가 상승 속도는 1.5배에 이르는 셈이다.  

 39개 외식 품목 중에서 가격이 가장 많이 뛴 것은 ‘김밥(38%)’과 ‘햄버거(37%)’다. 이들 메뉴는 모두 점심을 급히, 간단히 때워야 할 때 많이 찾는 ‘서민 식품’으로 꼽히지만 상승률은 상위권이었다. 서울 지역에서는 기본 야채 김밥을 제외하고는 3000원대 김밥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대학생 박모 씨(23)는 “수업 끝나고 바로 알바를 가야 해서 햄버거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박 씨는 “요즘 편의점 도시락도 아끼겠다는 생각에 직접 싸온 도시락으로 하루를 버틴다는 친구가 늘었다”며 “실제 프랜차이즈 커피도 줄이고 텀블러에 집에서 가져온 커피를 마시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떡볶이, 짜장면, 생선회, 도시락, 라면, 갈비탕 등 9개 품목도 30% 이상 올랐다. 짬뽕, 돈가스, 칼국수, 비빔밥, 치킨, 설렁탕도 상승률이 30%에 육박한다. 

 

이들 품목에 냉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삼겹살 등 20% 이상 상승한 품목을 더하면 30개에 이른다. 이들 역시 단골 회식 메뉴다. 구내식당 식사비도 24% 올랐다. 외식 품목 39개 중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상승률이 낮은 것은 소주 등 4개뿐이다.

 

지난 5년 동안 먹거리 재료인 농축수산물 가격이 22% 오른 데 비해, 외식 물가 상승 폭은 그보다 더 컸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 가격도 24% 오르며 높아진 물가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지방물가정보 시도별 외식비 평균가격에 따르면 외식비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울을 기준으로 김밥은 2020년 4월 2446원에서 지난 4월 3623원으로 뛰었다. 짜장면 평균 가격도 같은 기간 5115원에서 7500원이 됐다.

 

서민 외식 대표메뉴 삼겹살의 경우 1만6615원에서 2만447원으로 뛰었다. 여름철 사랑받는 메뉴 냉면도 8885원에서 1만2115원으로, 대표 보양식 삼계탕은 한 그릇 가격이 1만4462원에서 1만7500원으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5년간 외식 물가가 급격히 오른 이유로 식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을 꼽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원재료 공급의 변동성이 커진 데다가 환율 상승으로 수입 단가가 올랐다. 축산물과 수산물은 20%가량 상승했으며 밀가루, 치즈, 설탕 등 가공식품도 가격이 많이 뛰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배달앱 수수료 부담도 외식물가 상승의 요인이라고 짚기도 했다. 농식품부는 “일부 업체에서 배달앱 수수료 때문에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이중가격제(배달가격제)를 도입하고 있다”며 “특히 도시락 업체의 이중가격제 도입으로 지난해 11월 도시락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11.1% 상승한 바 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배달 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포함했으며,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최근 간담회에서 수수료 적정선에 대한 입법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문제를 단기간에 해소하긴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 역시 수입 원재료 가격 안정을 위한 할당관세 정책,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물가 안정을 위한 범부처 대책을 마련 중이다. 

 

유통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지속되고 있다. 2023년 기준 농축산물 평균 유통비용률은 49.2%로, 소비자가 1만원을 지불하면 절반가량이 유통비에 쓰이는 셈이다.

 

고물가·고금리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내수 경기 회복 없이는 외식업계의 가격 인상 압박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김상효 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경영난이 누적된 가운데 지금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구조”라며 “결국 경기가 살아나 수요가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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