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린 게 많으니까 그걸 막겠다고 ‘높은 사람들’을 모은 건가.”
국내 이커머스의 1인자 쿠팡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라는 검찰 윗선 압력이 있었다는 현직 검사의 폭로에 이어 최근 3년 반 동안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1위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해 쿠팡의 연이은 공직자 영입을 언급하며 “최근 논란을 보면 누구든 그런 의심이 들지 않겠나”고 꼬집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5월 이후 고용노동부 5∼6급 공무원 8명, 공정위 5급 사무관과 4급 과장, 산업통상자원부 3급 상당 관료, 검찰 7급 출신 등 10명 이상의 관료를 회사로 영입했다. 이러한 행보가 최근 국정감사에서의 폭로와 맞물리며 논란의 불길이 크게 번지고 있다.
쿠팡은 지난 13일 시작해 약 3주간 진행될 이번 국감에서 영업방식 불공정 논란, 택배 노동자 과로사, 수수료, 정산주기 등 문제로 여러 상임위원회의 공세를 받고 있다. 그리고 1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감장에서 폭탄이 터졌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문지석 부장검사가 검찰 지휘부가 핵심 증거를 누락하는 방식으로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무혐의로 처분하게 했다고 주장한 것. CFS는 쿠팡의 물류를 총괄하는 자회사다.
앞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지난 1월 CFS 퇴직금 미지급 사건과 관련해 쿠팡 측에 대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이 3개월 뒤 무혐의·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문 검사는 “부적절한 행동을 했던 모든 공무원이 잘못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현직 검사의 양심고백은 이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러니 검찰개혁을 하자는 것”이라며 “쿠팡 외압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입장을 내놓는 등 정치권으로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이와 관련해 쿠팡은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종합 국감을 앞둔 상황에서 자칫 여론에 기름을 부어 파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종철 CFS 대표는 우선 국감장에서 문 검사의 증언 후 논란이 된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지급 기준을 원래대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회사 내부에선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물류센터 밤샘 근로자의 건강 문제 등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에도 대구 지역에서 쿠팡 주간 배송을 하던 택배 대리점 소속 A씨가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이송 후 나흘 만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15일 노동부 국감에서 “명절 때 과한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 국감에서는 쿠팡이 타사 대비 농수산물 입점 수수료와 정산 주기가 농어민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14일에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를 오가며 수수료와 정산주기, 쿠팡파트너스의 ‘납치성 광고’ 등에 대한 질의에 답했다. 정무위원회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해외 체류를 이유로 14일 국감에 나오지 않자 오는 28일 종합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공정위 누적 과징금이 가장 높은 기업이 쿠팡(1628억원)이라는 소식도 이날 전해졌다. 향후에도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는 최근 쿠팡이 최소 4만8000명 이상 구독자를 와우멤버십 가격 인상에 동의하도록 유인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와우멤버십 가입자가 누릴 수 있는 할인 혜택을 허위 또는 과장 광고한 점, 와우멤버십에 쿠팡플레이와 쿠팡이츠 서비스를 끼워팔기 한 점, 쿠팡이츠가 입점 음식점에 최혜대우를 강요한 점에 대해서도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지난해 매출 32조원과 영업이익 6000억원을 거둘 정도로 급성장했으나 2010년 창립 이래 공정거래·노동·환경·사회 분야에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며 “현재 쿠팡 내부에서도 여러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