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등굣길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의 손에는 혹시 아이가 뛰어나갈까 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어른에게는 잠깐인 1분의 신호 대기 시간이 아이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바심을 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 그런 아이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부모, 그리고 횡단보도 앞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차량들.
이것이 대한민국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아침 풍경이다. 이른바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 내 운전자의 법적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은 운전자에게 무거운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최근 강원도 원주시에서 들려온 소식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원주시는 어린이 보행자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연말까지 3억 원의 예산을 들여 남원주초교사거리 등 주요 교차로 12곳에 ‘보행신호 적색잔여시간 표시기’를 확대 설치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름 그대로 ‘빨간불(정지 신호)이 초록불로 바뀌기까지 남은 시간’을 숫자로 보여주는 장치다. 단순히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이 작은 장치가 왜 중요할까? 원주시가 지난해 해당 장치를 설치한 11곳을 대상으로 시민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는 놀라웠다. 응답자의 94.4%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96.4%가 ‘확대 설치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적색잔여시간 표시기’는 보행자, 특히 아이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은 불안감을 유발하고, “이쯤이면 건너도 되겠지”라는 무단횡단의 유혹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30초… 15초… 3초’처럼 줄어드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은 지루한 기다림을 ‘초록불을 기다리는 게임’처럼 받아들인다. 이는 신호 대기 불편을 줄이는 것은 물론, 무단횡단을 예방하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된다.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5조의13)과 「도로교통법」(제12조)은 스쿨존 내에서 어린이가 사망하거나 다쳤을 때 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법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쿨존 시속 30km 제한은 ‘최고 속도’일 뿐이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아이가 있든 없든 ‘일단 멈춤’을 습관화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아이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운전하는 것만이 운전자 자신과 아이 모두를 지키는 길이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몫이라면, 현장에서 그 법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원주시의 ‘적색잔여시간 표시기’ 확대 설치는 큰 예산이 드는 사업은 아니지만, 시민 만족도와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모두 확보한 ‘적극 행정’의 사례다.
“멈춘다, 살핀다, 건넌다.” 횡단보도 안전의 기본 원칙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 있어도 아이 스스로 안전 습관을 갖추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적색잔여시간 표시기’가 있다고 해도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뛰어가면 되겠다”가 아니라,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린다”고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보호구역의 안전은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도, 많은 예산을 들인 시설물에만 의존해서도 달성되기 어렵다. 운전자는 ‘절대 감속’으로, 지자체는 ‘적색잔여시간 표시기’와 같은 맞춤형 안전시설 확충으로, 가정에서는 ‘보행 안전 교육’으로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원주시의 이번 사업이 단순히 12곳의 시설물 설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의 안전 의식을 높이고 전국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최유철 (법무사, 부동산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