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브랜드(PB) 상품 제조 수급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계약 서면을 미교부하고 판촉비용을 전가하는 등 갑질 혐의를 받아온 쿠팡과 그 자회사 씨피엘비(CPLB)에 대한 동의의결이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쿠팡은 사법적 제재를 피하는 대신 중소 협력사를 위해 30억원 규모의 상생 방안과 자진 시정 조치를 신속히 이행하게 됐다.
◆부당 대금 결정 첫 자진시정…314개 협력사 상생안 실행
2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 및 씨피엘피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판촉비용 분담 비율과 최소 생산요청수량 등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총 30억원 규모의 상생방안을 이행하는 동의의결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2022년 7월 하도급법에 동의의결이 도입된 이후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행위’에 대해 제재 대신 시정방안을 인용한 최초 사례다.
앞서 공정위는 쿠팡 등이 2022년 10월부터 314개 수급사업자에게 기명날인이 없는 발주 서면을 교부한 행위와 94개 업체를 대상으로 약정에 없는 판촉 행사를 진행하며 공급 단가를 인하한 행위 등을 조사해 왔다. 이에 쿠팡은 사법 리스크 장기화 대신 신속한 거래 관계 회복을 택하며 시정방안을 신청했다.
최종안에 따라 쿠팡 등은 향후 PB 상품 계약 시 중소업체의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최소 생산요청수량(MOQ)과 납품 준비 기간인 리드타임을 합의서에 의무 명문화해야 한다. 또한 판촉 행사 시 비용 분담 비율을 명시하되, 쿠팡 측이 50% 이상을 부담하도록 했다.
여기에 314개 협력사를 위한 30억원 규모의 현금성 상생 지원책도 가동된다. 단가 인하 피해를 본 94개 수급사업자에게는 즉각 1000만원씩 총 10억5000만원의 상품 개발 비용을 지급한다. 나머지 220개 수급사업자에게도 15억원 규모의 온라인 광고비를 전액 지원하며, 고충 수렴을 위한 정기협의회와 내부 심의 체계도 구축한다.
◆하도급 동의의결 확대…선행 사례들은
최근 다양한 산업군으로 하도급법 동의의결이 확대되는 추세다. 기업들이 공정위와의 소송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보다는 자발적인 거래 구조 개선과 상생 기금 출연을 통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해 5월 하이브·SM·YG·JYP·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연예기획사 5개사의 하도급법 위반(서면 지연 발급) 혐의에 대해 동의의결을 최종 확정한 바 있다. 이들 엔터사는 자발적인 전자계약 시스템 및 표준계약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업체별로 2억원씩 총 10억원 규모의 상생 기금을 조성해 동의의결을 확정했다.
효성 및 효성중공업은 지난 3월 기술자료 유용 방지와 하도급 거래 질서 개선을 골자로 하는 동의의결을 확정 받아 총 34억원 규모의 상생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10일 서면 지연 발급 혐의와 관련해 계약 관리 시스템 개선 및 총 113억원 규모의 상생 협력 방안을 내놓으며 동의의결 절차를 밟기도 했다.
◆면죄부 논란 속 실효성 과제
이번 쿠팡의 동의의결 최종 확정은 중소 협력업체들이 겪던 고질적인 재고 비축 부담과 부당한 단가 압박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실질적인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소송 장기화로 지칠 수 있는 영세 중소기업들에게 실질적 보상안을 신속하게 도출해 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재계 안팎에서는 대기업과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교묘한 법 위반 혐의를 저지르고도 돈을 앞세워 면죄부를 받거나 과징금 처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비판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향후 쿠팡이 제시한 30억원 상생 기금의 집행 내역과 계약서 내 MOQ·리드타임 명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철저하게 사후 모니터링을 진행해야만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함께 쿠팡과 씨피엘비가 동의의결을 성실하게 이행하는지 분기별로 점검할 계획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