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로봇 산업의 경쟁 방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더 정교한 관절과 센서, 더 빠른 구동 성능을 갖춘 하드웨어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로봇을 연결하고 운영하며 새로운 기능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시장을 이끄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기기를 판매한 것이 아니라 운영체제(OS), 앱스토어, 개발자 생태계를 구축하며 산업의 규칙을 바꿨다. 수많은 개발자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유저들이 이를 사용하는 선순환 구조가 되면서 플랫폼의 가치가 기기 자체보다 더 큰 경쟁력이 됐다. 로봇 역시 개별 성능보다 수많은 로봇을 연결하고 원격으로 관리하며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로봇(Software Defined Robot, SDR)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SDR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기능을 확장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형 로봇을 의미한다.
관련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글로벌 로봇 소프트웨어 시장이 2025년 238억9000만 달러에서 2026년 351억1000만 달러로 성장하고 2034년까지 연평균 46.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이 확대될수록 로봇은 개별 장비를 넘어 클라우드와 AI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가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처럼 연결성과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보안은 플랫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로봇은 AI, 클라우드, 센서, 네트워크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능이 추가된다. 이 과정에서 해커가 업데이트를 조작하거나 제어권을 탈취하면 물류 로봇의 이동 경로가 변경되거나 제조ᆞ의료 로봇이 오작동하는 등 실제 물리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의 현실화가 가능해지면서 로봇 보안에 대한 투자와 수요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마켓츠앤마켓츠는 로봇과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등 실제 물리 시스템을 보호하는 사이버-물리 시스템(CPS) 보안 시장이 2025년 160억 달러에서 2030년 34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IT 리서치 기업 가트너는 AI와 자율 시스템이 현실 세계로 확산되면서 사이버-물리 보안과 안전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체계가 차세대 보안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플랫폼의 핵심은 결국 신뢰(Trust)다. 수많은 로봇과 서버, 운영자, 개발자가 연결되는 환경에서는 디지털 인증서, 공개키 기반구조(PKI), 키 관리 시스템(KMS), 암호화 기술을 통해 로봇의 신원을 확인하고 데이터와 소프트웨어가 위·변조되지 않았음을 검증해야 한다. 스마트폰 생태계에서 앱스토어와 운영체제 보안이 사용자 신뢰를 구축했듯 로봇 플랫폼도 인증과 암호화 기술이 생태계의 기반이 된다.
국내 피지컬 AI 보안 전문기업 아우토크립트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자동차 보안에서 축적한 기술을 로봇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커넥티드카와 자율주행차는 이미 수많은 전자제어장치와 센서, 클라우드가 연결된 대표적인 피지컬 AI 시스템이다. 아우토크립트가 차량 분야에서 확보한 PKI 기반 인증, OTA 보안, 통신 보안, KMS 기술은 로봇 플랫폼에서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핵심 기술이다.
아우토크립트는 최근 미래모빌리티센터를 피지컬 AI 보안연구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자동차를 넘어 로봇, 방산,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로 연구개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자체 보안 검증 플랫폼(CSTP)과 설계 단계 보안(Security by Design)을 기반으로 로봇 플랫폼 보안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피지컬 AI 시대에 보안이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우토크립 관계자는 “앞으로는 로봇이 산업과 일상으로 빠르게 확산될수록 보안은 더 이상 부가 기능이 아니라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필수 인프라가 된다”며 “가장 성공하는 기업은 가장 뛰어난 로봇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지혜 기자 jhhw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