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소상공인의 과거 금융 이력보다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폭넓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신용평가체계를 바꾼다. 은행이 대출 신청을 받으면 기존 신용평가와 동시에 매출, 상권, 고용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성장등급을 산출하고, 이를 기존 신용등급과 결합해 최종 대출 심사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2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포용금융 전략추진단 신용인프라 분과회의’를 열고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체계(SCB)의 운영체계와 향후 적용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는 모형 개발뿐 아니라 데이터 수집과 등급 산출, 금융회사 전달까지 이어지는 시스템 구축을 마치고 8월 말부터 은행권 시범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소상공인 신용평가체계는 모형 개발과 관련 규정 및 시스템 정비를 마무리하고 8월 말부터 현장에서 시범운영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대출 신청과 동시에 ‘성장등급’ 산출…매출·상권·고용까지 본다
이번 개편에서는 새로운 평가모형 자체보다 이를 기존 은행 대출 프로세스 안에 실시간으로 집어넣는 구조가 눈에 띈다. 지금까지 은행이 개인사업자를 심사할 때는 대표자나 사업자의 기존 CB등급을 중심으로 대출 가능 여부와 한도 등을 판단했다. 앞으로는 이 과정과 동시에 사업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별도의 ‘S등급’을 산출한다.
은행이 소상공인의 대출 신청을 받으면 SCB 평가기관에 평가를 요청하고, 평가기관은 기존 CB평가와 함께 신용정보원에 성장등급 산출을 요청한다. 신용정보원은 자체 보유정보와 외부기관 데이터를 결합해 성장등급과 평가 사유를 산출한다. 이후 기존 CB등급과 성장등급을 결합한 SCB등급이 은행에 전달돼 실제 대출 심사에 쓰인다.
특히 금융위는 은행의 기존 여신심사 체계를 크게 뜯어고치지 않고도 새로운 평가가 가능하도록 실시간 데이터 연계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은행과 SCB평가기관, 신용정보원, 각종 데이터 보유기관을 연결해 대출 신청부터 등급 산출까지 한 번에 이뤄지도록 한다.
성장등급 산출을 위해 활용되는 데이터도 기존 신용평가보다 크게 넓어진다.
AI 기반 정량모형은 사업자의 매출 성장률과 같은 업종·지역 평균 대비 생산역량, 사업 지속 여부와 고용 유지, 온라인 플랫폼 활동 등을 분석한다. 여기에 사업장 접근성, 상권의 수익성과 포화도, 소비자 트렌드, 정부 지원정책과 규제 영향, 인증·업력·사업 규모 등 정성적 평가도 추가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소상공인 전용 데이터베이스도 별도로 구축한다.
카드·현금 결제정보를 통한 매출 추정치, 상권별 수익성과 안정성·활동성·포화도, VAN·POS 거래정보 등이 들어간다. 노란우산 등 공제상품 납부 이력이나 사업 지속성, 고용·산재보험 가입자 수,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활동성과 성장성도 평가에 활용한다.
◆내년 전 은행권으로 확대
SCB 활용 은행은 기존 7개에서 16개로 늘었으며 적용 예정 대출 규모는 약 2조2000억원이다. 기업·신한·국민·우리·농협·하나·제주은행을 비롯해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과 부산·경남·광주·전북은행 등 지방은행도 참여한다.
은행들은 SCB를 활용해 성장성이 높은 소상공인을 추가로 선별하고 신규 대출 공급이나 한도 확대, 금리 우대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특히 기존 CB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성장성이 높은 사업자가 주요 대상이다. 과거 금융거래만으로 평가할 경우 대출 대상에서 밀려날 수 있었던 차주를 성장등급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SCB는 일반 은행대출을 넘어 중금리 금융상품에도 들어간다. 오는 10월부터 개인사업자 전용 사잇돌대출에도 SCB를 적용한다. 금융위는 지난 4월 대출심사 시 개인사업자 특성을 고려해 사업자의 업종, 업력, 매출액 등 비금융정보를 심사하는 전용 사잇돌대출 도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앞으로는 성장성이 높은 중신용 개인사업자에게 우대금리를 적용해 고금리 대출과 은행권 저금리 대출 사이의 이른바 ‘금리 단층’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금융위는 올해를 SCB 운영체계를 실제 금융현장에 안착시키는 단계로 보고 있다.
우선 다음 달 중 참여기관 간 통합 테스트를 끝내고 8월 말 성장등급 중개 플랫폼을 연다. 이와 함께 금융회사가 SCB를 활용할 때 적용할 평가 대상과 대출절차, 모니터링, 불공정행위 방지 등을 담은 ‘소상공인 성장금융 가이드라인’도 8월 중 마련한다.
이후 적용범위는 단계적으로 넓어진다. 금융위는 내년에 SCB를 전 은행권과 지역신용보증재단으로 확대하고, 2028년부터는 전 금융권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카드매출뿐 아니라 에너지 사용량 등 사업 성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금융·비금융 데이터도 계속 발굴할 예정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