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사브르·에페·플뢰레 전 종목 메달을 따내며 펜싱 강국의 저력을 보여줬다. 그 뒤에는 SK텔레콤이 대한펜싱협회와 함께 개발한 펜싱 인공지능(AI) 전력분석 시스템 ‘SKT-FAN(Fencing AI Nexus)’이 있다.
29일 SK텔레콤에 따르면 SKT-FAN은 AI가 경기 영상 속 스코어보드의 점수 변화와 선수 움직임을 인식해 득·실점 시점을 찾아내고, 해당 시점이 표시된 타임라인과 주요 장면을 모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지난 8월부터 대표팀 훈련에 도입됐다.
단순히 주요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경기 영상과 움직임 데이터를 선수별로 축적해 필요한 분석 자료를 찾아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특징이다.
SKT-FAN은 분석해야 할 경기 수에 비해 전력분석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에는 2명의 전력분석관이 경기 영상을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장면을 편집·취합하는 수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SKT-FAN은 컴퓨터 비전과 모션 캡처 기술로 경기 영상 속 스코어보드의 점수 변화와 선수 움직임을 인식해 득·실점 시점을 자동으로 탐지한다. 이어 해당 시점을 기준으로 타임라인과 하이라이트를 생성해 필요한 장면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한다. 전력분석관이 전체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며 장면을 선별하던 작업을 AI가 맡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기당 약 1시간이 걸리던 전력분석 자료 정리 시간을 약 10분으로, 기존의 6분의 1 수준까지 단축했다. SK텔레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점수 인식과 타임라인·영상 자료 정리 등을 자동화해 영상 분석 관련 반복 업무를 최대 90%까지 줄이는 것이 목표로 하고 있다.
AI가 만든 분석 결과를 그대로 훈련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AI는 대량의 데이터 처리와 1차 분석을 담당하고, 전문가는 경기 맥락을 해석하고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맡는 구조다.
SKT-FAN은 선수의 스텝과 자세 변화를 데이터화해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정리한다. 이는 별도의 웨어러블 센서 없이 일반 경기 영상에서 선수의 관절 움직임을 추적하는 ‘비센서 AI 모션 캡처’ 기술이 적용된 덕분이다.
플뢰레·에페·사브르 등 세부 종목의 특성을 반영한 분석 체계도 갖췄다.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전력분석관과 사전에 정리한 종목별 특성을 반영한 SK텔레콤의 독자 알고리즘에 대형언어모델(LLM)을 결합해 선수의 장단점과 경기 특징을 담은 AI 전력분석 리포트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영상에서 추출한 장면과 움직임 데이터를 선수별 전력분석 자료로 연결하는 구조다.
AI가 추출한 경기·움직임 데이터는 선수별 데이터베이스(DB)로 축적된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상대 선수의 과거 경기 영상과 분석 결과를 SKT-FAN에서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경기 후 복기 중심이던 전력분석을 대회 중 전략 수립에도 활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대회 기간 상대 선수의 영상과 데이터를 신속하게 확인하고 전략을 조정할 수 있도록 분석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SKT-FAN은 SK텔레콤이 장기간 이어온 펜싱 지원의 연장선에 있다. SK텔레콤은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은 이래 24년간 훈련용품과 해외 대회 참가 지원, 올림픽 실전 모의 환경 조성 등에 누적 360억원을 후원했다. 국제 그랑프리와 클럽·동호인 대회 지원도 이어왔다. 기존의 훈련 인프라와 대회 지원에 AI 기술을 더해 경기 분석과 전략 준비 과정까지 뒷받침하는 형태로 지원을 확장한 것이다.
한국 펜싱은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 4연패를 달성하고, 남녀 사브르·에페·플뢰레 전 종목에서 총 10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SK텔레콤은 대회 준비 과정에 SKT-FAN을 도입한 데 이어 대회 기간 의무 트레이너와 전력분석원도 현지에 추가 파견해 대표팀을 지원했다.
SK텔레콤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피드백을 반영해 기능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경기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 정확도를 높여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까지 시스템을 고도화할 계획”이라며 “선수별·국가별 분석 자료를 쌓아, 개별 대회의 경기 준비를 넘어 한국 펜싱이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력분석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