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최근 1330원대 중반까지 내려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강달러 압력 속에서도 반도체 수출 호황에 따른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물량이 국내 외환시장에 대거 쏟아지며 원화 가치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1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8일 전 거래일보다 1.9원 내린 1338.5원에 거래를 마쳤다. 5거래일 연속 하락세다. 장중에는 1336.3원까지 떨어져 지난달 10일 이후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지난 6월 말 1549.4원, 7월 초 1555원대까지 치솟으며 금융위기 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은 석 달여 만에 210.9원(13.6%) 내렸다. 3분기 말 환율(1352.8원) 기준 낙폭(12.7%)은 1998년 4분기 이후 28년 만에 가장 컸다.
◆반도체 흑자에 기업 달러 매도 가세…수출·수입 업종 ‘희비 교차’
원화 강세의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과 탄탄한 경상수지 흑자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경상수지는 461억1000만달러, 상품수지는 468억1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환율 추가 상승을 기대하며 달러를 보유하던 기업들이 달러 매도에 나선 점도 하방 압력을 키웠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달러 강세 속에서도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출회 등 수급 여건이 지속될 기대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은 반도체 호황으로 재정 여력을 미래대응기금으로 편성하는 등 재정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점이 통화별 온도 차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환율 낙폭이 가팔라지면서 주요 산업계의 셈법도 업종별로 엇갈린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수출업종은 원화 환산 매출액과 해외 시장에서의 채산성 둔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반면 원유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고 외화 부채 부담이 컸던 항공·정유·철강업계는 유류비와 원자재 수입 원가 부담이 줄어 실질적인 수익성 방어에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다.
◆4분기 1280원·내년 1200원대 전망…외인 증시 매도·연준 금리 ‘변수’
금융권에서는 원화의 추가 절상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역·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들의 달러 매도로 시장에 달러가 유입되고 있다”며 4분기 환율 범위를 1280~1420원으로 제시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주요국 간 기준금리 격차 축소로 내년 달러화가 제한적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저평가된 원화가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추가 절상돼 내년 1200~1450원, 평균 1280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는 환율 하락 폭을 제한하는 변수다. 지난 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약 2조6000억원을 순매도하면서 달러 환전 수요가 발생했다. 글로벌 강달러 기조 지속 여부와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등에 따라 향후 원·달러 환율의 하락 속도는 조절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