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선진국, '체납자 패자부활'에서 시작된다

사단법인 한국납세자연대 회장 남우진
사단법인 한국납세자연대 회장 남우진

 

최근 한 언론(한국경제신문)이 창간 기획으로 던진 질문이 가슴을 울린다. 영국의 제임스 다이슨은 5,126번의 실패 끝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었고, 핀란드는 매년 10월 13일을 ‘세계 실패의 날’로 지정해 실패를 공유한다. 반면 한국 사회는 단 한 번의 사업 실패도 무능함의 '주홍글씨'로 낙인찍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낙인은 바로 체납자로 전락해 경제적 사망 선고를 받는 '조세 신불자' 들이다.

 

국세청의 누적 체납액이 110조 원을 넘어서고 징수 목표가 매년 높아지고 있지만, 현장에는 수십 년째 징수 불능 상태로 방치된 수많은 체납자가 존재한다. 이들이 평생 체납자로 남게 되는 핵심 원인은 제도의 거대한 허점에 있다.

 

세무당국이 맹지, 도로, 하천, 노후 차량 등 사실상 환가 가치가 없는 ‘실익 없는 재산’에 압류 딱지만 붙여놓은 채, 공매도 수의계약도 진행하지 않고 방치하는 탓이다. 압류 상태가 유지되는 한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는 무한히 중단된다. 10여 년 전 이미 12만 명을 넘어선 공매중지자들은 국가의 행정력 낭비 속에서 평생 재기의 길이 막혀버렸다.

 

체납자를 방치하면 국가 세수도 0원이고 복지 지출만 늘어난다. 이제 ‘징수’ 중심의 패러다임을 ‘재기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1,600억 원의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수해 소각하며 서민들의 빚을 탕감해 준 '주빌리은행' 모델이 훌륭한 이정표다. 금융 채권에 주빌리은행이 있었다면, 조세 채권에는 ‘조세 패자부활 소각 펀드’가 필요하다.

 

실익이 없어 공매가 중지된 체납 압류 재산을 민간 소셜 펀드나 시민 사회가 정당한 가격(5% 안팎)으로 매수·정리하여 압류를 해제하고, 묶여 있던 시효를 진행시켜 체납자의 짐을 덜어주는 구조다. 당국은 회수 불가능했던 체납 세수를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체납자는 억울한 주홍글씨를 벗고 당당히 경제활동으로 복귀해 다시 세금을 내는 건실한 납세자로 선순환된다.

 

실패를 자산으로 품지 못하는 사회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벼랑 끝에 선 조세 신불자들에게 실질적인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혜택이 아니라 국가적 세수 확보이자 선진 사회의 기본 품격이다. 공매중지 압류 재산의 매수·소각 모델 도입을 위해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법적·제도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사단법인 한국납세자연대 회장 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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