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자꾸만 미뤄지고 있다. 올해 세 차례가량 기준금리가 단행될 거란 전망은 자취를 감췄다.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통화정책 전환 시점을 늦추고 있다. 연내 기준금리가 인하되더라도 한 차례 정도에 그칠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3.50%로 인상을 단행한 이후 10차례 연속 동결 결정이다.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한은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가운데 향후 물가경로 및 경기 흐름을 좀 더 지켜보자는 판단이 배경이 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근원물가 상승률은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국제 유가 상승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망치인 2.3%까지 내려가려는 게 지연되면 하반기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준금리 동결은 시장의 전망과 일치한다. 금융투자협회의 최근 설문 조사 결과 채권전문가의 98%는 이달 금리 동결을 전망하면서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률을 그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두 달 연속 3.1%를 기록하며 한은의 관리 목표에 좀처럼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가 예상하는 1년 후 소비자물가를 뜻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2%로 5개월 새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농산물 가격 등이 뛰며 체감물가가 오른 데다 국제유가까지 오름세를 이어간 게 영향을 미쳤다.
미국도 디스인플레이션 속도가 더딘 건 마찬가지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 물가가 잡히기는커녕 전월(3.2%) 대비 상승 폭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비록 한 달가량 시차가 있지만, 연준 위원들의 금리 인하에 대한 인식도 후퇴했다. 연준이 공개한 3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최근 지표가 인플레이션이 2%로 안정적으로 둔화한다는 확신을 늘리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좀처럼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자 주요 투자은행(IB)도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을 속속 늦추고 있다. 한은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UBS는 첫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당초 6월에서 9월로, 골드만삭스와 블룸버그는 6월에서 7월로 각각 수정했다. 바클레이즈는 늦으면 연준이 오는 12월에서야 한 차례 금리를 낮출 거라고 전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오는 9월에서야 금리 인하가 단행될 거라고 예상하는 비율은 45%까지 뛰었다.
한은도 연준과 보조를 맞출 공산이 크다. 이 총재가 “소비자물가, 환율 등 국내 요인에 따라 통화정책을 펼칠 여력이 지난해보다 더 커졌다”며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연준보다 먼저 한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 CPI 발표 후 보고서를 내고 “인플레이션 정상화에 대한 추가적인 확신이라는 첫 금리 인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전망”이라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해 연내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을 당초 7월, 10월, 11월 세 차례에서 10월, 11월 두 차례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소위 울퉁불퉁한 물가 부담이 3월에도 이어졌다. 당장 6월 인하를 기대했던 전망을 더 유지하기엔 매우 어려운 상황 변화”라면서 “올해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횟수를 종전 3회에서 2회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신얼 상상인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존 5월 금리 인하 전망에서 7월 금리 인하 소수의견 및 8월 금리 인하로 전망을 수정한다”고 전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