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에 사는 30대 A씨는 초등학생 조카와 함께 편의점에 갔다가 가격을 보고 놀랐다. 탄산음료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계산대에 올렸을 뿐인데 금액은 5000원에 가까웠다. A씨는 “물가가 이렇게 많이 올랐는지 모르고 살았다”며 “할 수 없이 1+1 행사 상품에 손이 간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6개월간 이어진 혼란기에 식품 기업들의 가격 인상 러시가 이어졌다. 가공식품 53개 품목 가격이 뛰었고, 이 중 5% 넘게 오른 품목은 19개나 됐다.
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74개 품목 가운데 계엄사태 직전인 지난해 11월 대비 물가지수가 상승한 품목은 53개로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6개월간 가격이 5% 이상 오른 품목은 19개에 이른다. 오징어채가 31.9%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초콜릿은 10.4% 치솟았고 커피는 8.2% 상승했다. 양념 소스와 식초, 젓갈은 7% 넘게 올랐다. 빵과 잼, 햄·베이컨, 고추장, 생수는 각각 6%가량 올랐다. 아이스크림과 유산균, 냉동식품, 어묵, 라면은 각각 5%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케이크, 단무지, 스낵과자, 편의점 도시락, 즉석식품, 혼합조미료 등은 3∼4% 올랐다. 김치와 맥주는 2% 이상 올랐다. 주스, 시리얼, 치즈와 간장, 설탕, 소금 등도 상승했다.
다만 식용유(-8.9%), 두부(-4.1%), 국수(-4.1%), 밀가루(-2.2%) 등 17개 품목 물가는 내렸으며 당면 등 4개 품목은 변동 없었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의 전달 대비 상승률은 4.1%로 계엄 사태 이전인 지난해 11월 1.3%의 3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식품기업의 제품 가격 인상은 탄핵정국의 혼란기인 연초부터 본격화했다. 그동안 기업이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다 국정 공백기에 제품 가격을 무더기로 올렸다는 분석이 많다.
동서식품은 대선 나흘 전인 지난달 30일 평균 7.7% 추가 인상했다. 커피 제품 가격인상률은 9%다. 커피는 지난해 11월 평균 8.9% 인상한 것을 더해 6개월 새 20% 가까이 몸값이 뛰었다.
대상과 오리온은 일부 품목의 가격을 한 번에 20%가량 높였다. 대상은 설을 앞둔 올해 1월 드레싱류 가격을 23.4% 올리고 후추는 19% 인상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12월 13개 제품 가격을 평균 10.6% 올렸다.
국민 식품인 라면 가격도 비상이다. 농심이 2023년 7월 960원으로 인하했던 신라면 가격을 올해 3월 다시 1000원으로 올렸다. 오뚜기도 4월 진라면 등 라면 16개의 출고가를 평균 7.5% 인상했다.
이처럼 최근 6개월간 식품기업의 가격 인상이 집중되면서 먹거리 물가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3년 전인 2022년 5월 윤 정부 출범 당시와 비교해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71개가 올랐다. 특히 두 자릿수 상승한 가공식품은 3분의 2인 50개에 달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과거에도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나, 환율 상승 등의 이유로 일부 기업이 가격을 인상한 적은 있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원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완화한 상황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가격이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업체에서 지난해 매출원가 증감률이 매출액 증가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면서 “이는 원가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