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켓팅(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켓팅 경쟁)이 일상이 된 시대다. 보고 싶은 공연, 경기 티켓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모든 것이 편해진 21세기 디지털 AI시대인데, 티켓을 못 구해 발을 동동거린다. 티켓팅 스트레스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극장 뒤편 으슥한 골목에서 남의 눈을 피해 현금과 티켓을 맞바꾸던 모습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됐다. 티켓 재판매 관련 수요와 공급은 90년대 인터넷 보급과 함께 눈덩이처럼 커졌다. 초창기 카페, 커뮤니티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거래를 흥정하고 실물 티켓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주고받던 PC 기반 시장이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J 커브를 그리며 급팽창했다. 2020년대 이후는 ‘디지털 총력전’ 양상이다. 매크로와 모바일 메신저, C2C 전자상거래 플랫폼, QR코드와 AI 등을 이용한 기술적 진화가 눈부시다. 본격적인 ‘2차 티켓 거래 시장’이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고 있으며, 그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어둠속에 몰래 숨어서 표를 거래한다’는 뜻의 ‘암표’라는 단어는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자.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
단군이래 최고로 풍요로운 시대다. 수요가 커졌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문화예술 콘텐츠 소비가 매년 급증세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팔린 티켓예매수는 2,224만 매, 판매액은 약 1조 4,537억원에 달한다. 대중문화 르네상스 시기인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K-POP 열풍이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스포츠 현장도 피켓팅 경쟁이 치열하다. KBO리그는 지난해 정규시즌 720경기에 관중 1088만7705명을 유치하며 꿈의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포스트 시즌 직관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친구가 나서야 가능하고, 주말 경기 티켓 구하기 조차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는 시범경기부터 매진 소식이 들려왔다. GDP(1인당 국내총생산) 4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어 티켓 시장 규모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피켓팅’은 대선 공약에 등장했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사가 지대한 사안이 됐다. 이재명 정부는 후보시절 공약 사항으로 스포츠티켓 예매 추첨제를 내세웠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2차 판매 티켓 가격만 올려 놓을 수도 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을때 암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고전적으로 논해왔던 화두다.
문제가 있는데 다들 손 놓고 있는것은 아니다. 정부 기관은 물론 콘텐츠 공급자가 직접 나서 ‘암표 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AI(인공지능)시대에 접어들며 디지털 기반 암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진화 중이다. AI를 이용해 예매 성공률을 확 끌어 올렸다는 티케팅 대행업체 광고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를 막는 쪽도 AI를 내세운다. 모니터링을 자동화하고 티켓 실구매자 명의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동원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온갖 티켓이 거래되고 있다. ‘열 사람 한 도둑 못 잡는다’는 옛말처럼, 불법 거래를 적발하고 죄를 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티켓 2차 거래에는 국경도 없다. 지난 4월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에서 암표를 팔고 샀던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이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 최대 1000만원까지 재판매 가격이 ‘떡상’ 했던 10월 오아시스 내한 공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자국에서 불법 유통된 한국인 계정 정보를 입력해 임영웅 콘서트처럼 예매하기 힘든 공연, 경기 등의 표를 대량 구매해 재판매 하는 방식으로 불법 이익을 얻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티켓 2차 거래를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제도적 보완을 통해 시장을 양성화 시켜야 한다. 콘텐츠 제공자, 1차 티켓 판매자, 2차 티켓 판매자, 최종 구매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 기술적으로 투명한 거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기, 개인정보 유출 등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 요인을 차단해야 하고, 근거가 되는 법안 정비도 필수다. 국가간 불법 티켓 거래를 감시하고 제재할 수 있는 국가간 공조 시스템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전경우 기자 kw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