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고 있다. 중동 불안에 따라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할 경우 국내 산업계에도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23일 이란 의회(마즐리스)는 미국의 폭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최종 결정권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있지만, 실제 봉쇄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날 미국이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 내 주요 핵시설을 공습한 데 따른 보복 조처의 일환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걸프해역과 오만만을 잇는 지역으로 사우디·쿠웨이트·이라크·이란·아랍에미레이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핵심 해상 운송로다.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와 석유의 약 25%가 이곳을 통과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수심이 비교적 얕아 대형 유조선이 지나갈 수 있는 해로가 한정적인데, 이런 대형 선박은 대부분 이란 영해를 지나야 한다는 점에서 이란이 사실상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
이처럼 중동 지역 내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는 크게 뛰었다.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15분 현재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전날 대비 2.19% 상승한 75.46달러에 거래 중이다.
WTI 가격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개시된 이후 약 13% 오른 상태다. 브렌트유도 하루 전보다 2.16% 오른 78.67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브렌트유는 개장 직후 배럴당 81달러까지 뛰어올랐다.
사태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99%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국제 유가가 더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무역협회는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국내 기업의 원가는 2.82%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요 수출기업들은 해상운임 상승에 따른 물류비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대형가전을 주로 수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해상운임 상승 시 수익성이 나빠진다. 휘발유·전기요금·운송비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자극 우려도 있다. 정유업계도 좌불안석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석유 수요가 위축될 우려가 커지고 정제마진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에너지·수출입·해운물류 등 부문별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를 열고 국내외 현안을 논의하면서 급변하는 중동 상황의 현황과 영향에 대한 분석, 이에 대한 대응책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앞서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도 이날 ‘중동 사태 관련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는 만큼 관계기관이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에너지 가격 및 수급 상황을 밀착 점검·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