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0대 여성 A씨는 1년 반 밖에 쓰지 않은 전자레인지가 갑자기 고장나 불편을 겪었다. 공식 수리센터에 문의하니 해당 증상은 인버터 불량일 확률이 높아, 수리 비용으로 11만~12만원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상 수리는 1년 보증 기간이 지나 받을 수 없었다. 이럴 바에야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A씨는 7만원대 제품을 구매했고,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최근 TCL, 하이센스 등 가성비 중국 가전이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붙이는 가운데 국내 가전양판점도 자체브랜드(PB)를 앞세워 시장 대응에 나서고 있다.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가성비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도 호의적으로 변화한 것을 공략하고 있다. 반면 냉장고나 세탁기, TV 같은 대형가전의 경우 인공지능(AI) 기능을 더해 삶을 더 쾌적하게 만들어주는 프리미엄 라인이 여전히 인기다.
◆AI가 온∙습도 조절 알아서…프리미엄 가전 다양화
삼성전자의 AI 가전 3대장인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는 차별화된 성능과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매출이 급증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 1~5월 가정용 스탠드 및 벽걸이 에어컨의 누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했다. 올해는 전년보다 한 달 빠른 5월에 하루 평균 1만대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비스포크 4도어 키친핏 냉장고도 1~5월 판매량이 40% 증가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합친 비스포크 AI 콤보 세탁건조기 1~5월 판매량도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다. 5월 한달 간 판매량은 출시 이후 처음으로 1만대를 돌파했다.
이 같은 시장 호응은 삼성전자가 2025년형 AI 가전의 성능을 대폭 강화한 데서 유래했다. 특히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고 상황에 맞춰 작동하는 맞춤형 AI 기능들이 주효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AI 에어컨은 ‘AI 쾌적’ 기능을 통해 사용자의 생활 패턴과 날씨, 실내외 온∙습도를 분석해 최적의 냉방 환경을 제공한다. ‘AI 절약모드’를 통해 최대 30%까지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김연아·전지현·한가인을 앞세운 ‘AI 가전 트로이카’ 캠페인을 전개하며 브랜드 인지도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AI의 개념을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으로 재정의하고, AI 가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LG전자가 선보인 2025년형 ‘LG 휘센 오브제컬렉션 타워I’와 ‘LG 휘센 오브제컬렉션 뷰I 프로’는 AI 에이전트 ‘LG 퓨론’을 탑재했다. 단순한 음성 명령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공감형 AI 기술인 ‘AI음성인식’ 기능이 특징이다.
“땀나네”라는 일상적인 표현만으로 AI가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 온도와 풍량을 조절한다. 리모컨 없이도 음성으로 손쉽게 제어할 수 있어 사용자 만족도가 높다. “에어컨을 켰더니 이미 원하는 온도와 바람이 설정돼 있었다”는 소비자 경험이 입소문을 타며 ‘AI 바람’ 기능도 주목받고 있다. 이 기능은 사용자의 이용 패턴과 공간 구조를 학습해 맞춤형 냉방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에어컨을 켜면 평소 사용자가 선호하는 온도로 자동 설정되며, “내가 좋아하는 온도 알지?”라는 말에도 반응해 온도를 맞춰준다.
이처럼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중심으로 LG 휘센 스탠드 에어컨의 1~4월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가전양판점, PB 다각화로 틈새 수요 공략
국내 가전양판점 대표주자 롯데하이마트와 전자랜드는 PB를 앞세워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유통 과정에서 마진을 절감해 가전회사 프리미엄 라인의 절반 이상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4월 1∼2인 가구를 겨냥한 가전 PB 플럭스(PLUX)를 공식 론칭했다. 2016년 선보인 하이메이드(HIMADE)를 개편한 것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인구 구조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소비 트렌드 등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년여 간의 조사 및 기획을 거쳐 새 브랜드를 선보였다.
플럭스는 기본에 충실한 기능과 디자인을 채택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대표적으로 ‘플럭스 330리터 냉장고’는 소용량이면서도 에너지효율등급 1등급에 모던한 베이지 색상으로 디자인 요소까지 갖췄으며 가격은 44만원대다.
여기에 43형 이동형 QLED TV와 초경량 스테이션 청소기, 1구 인덕션, 무연 그릴 등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무엇보다 롯데하이마트는 플럭스 상품의 사후서비스(AS) 기간을 중소형 가전 3년, 대형가전 5년으로 늘려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었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추가로 상품을 선보여 연내 200여종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매트글라스 강화유리를 탑재한 3구 전기레인지, 가성비를 극대화한 건조 분쇄형 음식물 처리기, 커스텀 키보드 등이 출시를 앞뒀다.
전자랜드도 2008년 PB ‘아낙’을 론칭해 다양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에는 아낙 브랜드로는 최초로 스테이션 청소기 ‘아낙 슬림 더스트 스테이션’을 출시했다. 먼지비움 기능과 청소기 거치, 충전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청소기 무게는 1.7㎏, 핸디형 전환 시 0.85㎏으로 가볍다. 출고가는 주요 가전 제조사 스테이션 청소기 평균가 대비 50% 정도 낮다.
이밖에 서큘레이터, 가습기 등 다양한 PB 소형 가전을 운영 중인 전자랜드는 상품 다각화를 통해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을 흡수하겠다는 포부다.
가전제품은 가격대가 높은 만큼, 직접 보고 구매하길 원하는 수요가 높아 다른 유통채널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에 이마트는 철저한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단독 상품을 론칭해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트레이더스가 지난해 하반기 오프라인 단독으로 론칭한 ‘미닉스 더 플렌더 음식물 처리기’는 이틀만에 전국 물량이 완판되는 등 열풍을 일으켰다. 기존 음식물 처리기가 대부분 4인 이상 가구가 쓰는 대용량에 100만원대로 고가였다면, 이 제품은 용량을 낮춰 40만원대에 기획한 것이 특징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오래 사용하는 대형가전의 경우 프리미엄 라인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높지만, 소형가전의 경우 1~2인 가구를 중심으로 저렴한 PB를 찾는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