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일상은 플랫폼 위에 살아가고 있다. 검색, 결제, 택시 호출, 콘텐츠 소비까지 대부분의 소비와 생활은 이제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 안에서 이뤄진다. 플랫폼은 단순한 앱이나 기술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참여자 간 연결을 중개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알고리즘을 통해 시장 질서를 설계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이자 국가 전략의 핵심축이다.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된 오늘날, 플랫폼은 더 이상 기업의 비즈니스 수단에 머물지 않고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 산업 구조는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공급하고 소비자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파이프라인 산업’ 모델이었다. 그러나 플랫폼은 네트워크 기반의 다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로 가치가 증대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파이프라인, 플랫폼, 새로운 경영전략(Pipelines, Platforms, and the New Rules of Strategy)’은 플랫폼 전략이 기존 공급사슬 기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전략 구조 자체가 재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이제 얼마나 잘 연결하고 조율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플랫폼을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다. 정책은 소비자 보호와 불공정 행위 방지에 집중돼 있으며, 규제 중심 접근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반면, 플랫폼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설계하려는 정책적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처럼 비전 없는 규제 중심의 정책 환경 속에서는 국내 플랫폼 기업이 글로벌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플랫폼의 본질은 연결성과 확장성에 있다. 플랫폼 생태계는 이른바 록인(Lock-in) 효과로 인해 진입 후 사용자의 충성도와 이탈 비용이 급격히 높아진다. 여기에 번들링 전략과 인접 시장 확장을 통합하는 플랫폼 인벨롭먼트(Platform Envelopment) 전략까지 더해지면, 한 번 형성된 지배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러한 전략은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플랫폼의 복합성과 전략적 구조는 단순한 규제가 아닌, 정교한 제도 설계와 기술 투자, 생태계 조정 정책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바로 지금이 플랫폼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략적 기회의 창이 열린 순간이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데이터·AI·디지털 경제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이 시점은 한국이 디지털 주권과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이기도 하다. 이 창이 영원히 열려 있지는 않다.
이러한 기회는 한시적이며, 결단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카이로스(Kairos)’의 순간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규제와 육성의 균형을 맞추고, 플랫폼 산업을 국가 전략의 한 축으로 끌어올릴 실질적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육성 정책은 기술 내재화, 글로벌 확산, 데이터 주권 강화를 중심으로 다층화돼야 하며, 규제는 시장 질서와 이용자 보호라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 정돈돼야 한다.
무엇보다 규제와 육성, 기술 투자와 생태계 설계를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국가 전략 체계 마련이 중요하다. 각 부처가 분절적으로 접근해서는 플랫폼 산업의 복잡성과 속도에 대응할 수 없다. 민간과 정부, 산업계와 학계가 함께 협력하는 전방위적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한국형 플랫폼이 단지 국내 대표 기업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생태계의 핵심 주체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플랫폼 경쟁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국가 간 기술 주권과 산업 패권을 가르는 게임이 되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격차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산업계 모두 플랫폼 전략을 중심에 두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설계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지금이며, 이 결정의 타이밍은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디지털 미래의 향방을 가를 디지털 도약의 분수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