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울산에 거주하는 대학생 송영리 씨는 최근 응원하는 축구팀 울산HD 유니폼 두 벌을 38만원에 구매했다. 올해만 구단 유니폼과 의류로 100만원을 넘게 썼다는 그는 “우리팀 스폰서가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와 제품이라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송 씨는 “대신 평소 입는 옷은 테무에서 산다. 한 벌에 5000원~1만원 수준이라 부담이 없다”며 “일상적으로 아낀 의류비로 유니폼을 지르는 것 같다”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2. 서울의 30대 회사원 이민정 씨는 평일과 주말의 먹거리가 180도 달라진다. 그는 “평소 점심은 구내식당, 저녁은 동네 대형마트 식품코너에서 할인가로 파는 샐러드를 사서 집에서 해결한다”며 “대신 주말에 한 끼는 꼭 근사한 비스트로펍을 찾는다. 남자친구와 둘이서 주말 디너에 와인까지 곁들이면 10만원은 우습게 나간다. 그래도 평소 식비를 아꼈으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꺼렸던 회사 회식도 최근엔 식비 절약의 개념으로 반기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고물가 시대를 맞아 소비 지출이 극단으로 갈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부자와 서민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소득 양극화의 영향 뿐 아니라, 평소에는 가성비 소비로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는 ‘플렉스’를 하는 2030세대의 소비 패턴이 자리를 잡으면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25일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와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간 소득 격차는 2억32만원으로 통계가 작성된 2017년 이래 처음으로 2억원을 넘겼다. 올해 1분기 소비지출은 하위 10%가 135만8000원, 상위 10%가 520만4000원으로 격차가 384만6000원이나 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유통가에서도 소비자 유치를 위한 투트랙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날 이마트 용산점에서 판매 중인 위스키를 비교하니 가장 싼 제품(저스트포하이볼)은 5980원이었고, 가장 비싼 것은 마쓰이 싱글몰트 미즈나라 캐스트로 16만원이었다. 용량과 원료, 음용법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같은 매장의 같은 위스키임에도 가격 차이가 30배 가까이 났다.
화장품도 균일가 생활용품점인 다이소에서 파는 3000원 화장품이 품절대란을 일으키는 동시에 10만원이 넘는 럭셔리 화장품도 명품관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기본적으로 저가 경쟁을 펼치는 이커머스에서 럭셔리 뷰티 라인업을 확대하는 추세인데 이를 통해서도 소비의 양극화를 읽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 입장에서는 단 하나를 판매해도 객단가가 높아서 수익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여름철 대표 먹거리인 빙수도 이른바 갓성비와 명품으로 나뉜다. 최근 카페 프랜차이즈에서 연이어 출시한 4000~6000원대 1인용 빙수가 10~20대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끄는 가운데, 서울신라호텔의 명물로 자리 잡은 ‘망빙(애플망고빙수)’은 1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매년 여름 완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이달 그랜드 인터컨티네탈 서울 파르네스가 출시한 벨에포크 샴페인 빙수는 가격이 15만원에 이르지만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유통 전문가는 “고물가와 불황 속에서 중간 소비층이 점차 얇아지는 가운데 평소엔 아끼더라도 작은 사치(스몰럭셔리)로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소비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며 “소득 양극화도 심화되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초저가 상품과 고가의 명품이 동시에 인기를 얻는 현상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