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음극재 때리기…K배터리는 어부지리?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애리조나주 퀸 크릭 공장 건설 현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이차전지 핵심소재로 쓰이는 흑연 음극재에 최대 93.5%에 달하는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자국 산업 보호와 중국 공급망 배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의 중국 의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18일 BTR, 산산(ShanShan), 신줌(Shinzoom), 상타이(Shangtai), 카이진(Kaijin) 등 세계 음극재 시장 상위 5개 중국 기업에 대해 93.5%의 반덤핑 관세를 예비 판정으로 결정했다. 이로써 중국산 음극재는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 배제되는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이번 반덤핑 관세 최종 결정은 오는 12월 5일 내려진다. 중국산 음극재 대체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공급망 안정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경제적 압박이자 정치적 무기화 전략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흑연 수출 규제를 예고하는 등 양국 간 전략 자원의 무기화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포스코퓨처엠 등 한국산 음극재가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음극재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SNE리서치에 따르면 상위 10위권은 모두가 중국 기업이다. 포스코퓨처엠은 11위다. 

 

실상은 한국과 미국 기업들의 공급망 구조가 중국산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상무부 공고에 따르면 테슬라를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모두 중국 법인을 통해 중국산 음극재를 조달해 왔다. 이는 미국 내 자국 생산 공장에서조차 중국산 소재 없이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운 구조임을 보여주는 단적 사례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그동안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이 회사의 세종 음극재 공장은 가동률이 30%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지난해 음극재 사업에서 수백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향후 포스코퓨처엠이 세계 상위권 중국 기업을 대체할 수 있는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현 상황은 중국의 독점 구조와 미국의 강압적 보호주의가 맞물려서 생긴 호재처럼 보인다”면서도 “한국을 비롯한 비 중국기업들이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 없이 외부 변수에 지나치게 취약한 구조적 문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 기업들도 하루 빨리 공급망 다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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