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경제가 급변하는 가운데 한국 제조업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AI를 통한 산업 전환’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잃어버린 10년…한국 제조업은 이미 노화 단계
최태원 회장은 지난 17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48회 대한상의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제조업은 이미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노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며 제조업 호황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제3국 시장에서 중국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의 제조 기술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고 반면 우리는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갱신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화학 업계와 반도체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최 회장은 “러시아산 값싼 원유가 중국과 인도로 들어가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 다수가 적자에 빠졌고,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는 오히려 중국의 자립화를 앞당기고 있다”며 기존 산업 기반이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공지능(AI)이 희망
이에 대한 해법으로 최 회장은 ‘AI 기반 제조업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AI를 활용해 제조업을 혁신하지 못하면, 10년 안에 상당수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라며 AI 도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AI 분야 역시 중국의 속도가 우리보다 빠르다”며 “그러나 지금은 초기 단계이므로, 지금이라도 빠르게 캐치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일본과의 협력을 AI 경쟁력 강화의 실질적 해법으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한국은 제조 데이터나 산업 규모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며 “일본과의 데이터 교환을 통해 상호 보완한다면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협력이 돌파구
오는 10월 열릴 예정인 APEC CEO 서밋에 대해서도 글로벌 협력을 통해 산업 재편의 돌파구를 마련할 기회로 평가했다. 최 회장은 “우리 기업들이 겪는 관세 문제를 APEC을 통해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AI뿐 아니라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분야에서도 새로운 협력 구도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최 회장 명의로 엔비디아, 구글, 메타 등 글로벌 기업 CEO 1000여 명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 최 회장은 “순다르 피차이, 마크 저커버그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산업계의 글로벌 연대 기반 확충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장남 최인근 씨의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 이직에 대해서는 “아이들 인생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일각에서 말하는 후계 수업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법원 무죄 선고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재계의 일원으로서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