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기쁨도 잠시,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한국을 세계 최빈민국으로 전락시켰다. 한국은 분단의 아픔과 가난에 허덕였고, 국토 곳곳에는 전쟁의 잔상이 남았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사업과 국민 특유의 근면성실을 앞세워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유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성장한 유일무이한 국가로,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했던 1세대 창업주들의 투혼이 함께한다. 전후 폐허가 된 국토를 바로 세우는데 이바지한 ‘왕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부터 반도체 강국의 기틀을 닦은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 전자∙화학 등 첨단산업에 뛰어든 구인회 LG그룹 초대회장이 한국 산업화의 거물로 꼽힌다.
◆“이봐 해봤어?”…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건설로 시작해 조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중화학·중공업을 개척해 한국 경제의 뼈대를 세웠다. “이봐, 해봤어?”라는 명언을 남긴 정 회장은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기업가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전히 칭송받고 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해방 후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자동차공업사,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전쟁 후 남은 황무지 위에 도로를 닦고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고 건물을 올렸다. 이 같은 토목·건축 사업 수행 능력을 바탕으로, 1960~1970년대에는 고속도로, 댐, 항만, 발전소 등 국가 기간시설 건설을 주도했다. 특히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지금의 입지에 올랐다.
1970년 7월 7일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이 있게 한 주역이자, 국토의 대동맥으로 불린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국책사업으로, 현대건설이 연인원 900만명, 중장비 165만대, 시멘트 680만포, 아스팔트 47만드럼, 철근 5만톤을 투입해 총연장 4차선 428㎞의 약 30%에 해당하는 128㎞ 구간을 건설했다.
현대는 건설업을 시작으로 조선, 자동차, 중공업, 금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국내 대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자∙반도체 가능성 내다본 호암 이병철
호암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전자·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마련해 한국을 세계 전자 강국 반열에 올렸다. 삼성의 시작은 이 회장이 1938년 대구에 설립한 삼성상회다. 청과물과 건어물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을 주로 하다가, 해방 후 전문 무역회사인 삼성물산으로 성장했다. 이후 1950년대 제일제당, 제일모직을 연달아 설립하며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이 회장은 1960년대 후반 전자산업이야말로 기술,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와 수출전망 등 우리나라 경제 단계에 꼭 알맞은 산업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에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을 세웠고, 같은 해 12월 일본 산요·스미코토 등과 합작회사 삼성산요전기를 설립하며 전자산업을 본격화했다. 이 회장은 과감한 투자로 수원공장을 건설했으며 1978년 흑백TV 200만대 생산, 1984년 국내 최초로 컬러TV 500만대 생산 돌파 등의 기록을 세웠다.
1980년대에는 현재 삼성전자의 한 축인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며, 1984년 기흥공장에서 국내 최초로 64K D램 메모리 반도체를 양산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불리게 된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전자·화학 개척한 LG그룹 창업주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은 인화와 개척정신, 국리민복의 일념으로 플라스틱 사업과 정유 사업, 통신·전선 사업, 전기·전자 사업에 뛰어들어 경제 발전을 견인했다.
LG의 전신은 구 회장이 1947년 부산에 설립한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이다. 광복 직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화학공장 건물 일부를 사들여 최초의 국산 화장품 ‘럭키크림’을 만들었다. 럭키크림은 크게 성공했지만, 크림통 뚜껑이 잘 깨지는 문제가 있었다. 구 회장은 이때 플라스틱 사업 진출의 꿈을 품게 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구 회장은 국내 최초로 사출성형기를 도입해 플라스틱 사업을 시작했다. 1952년 11월 마침내 첫 플라스틱 빗을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산업재로 영역을 확대하며 국내 화학공업의 기초를 다졌다. 1958년 설립한 금성사(현 LG전자)는 한국 최초의 라디오, 선풍기, 냉장고, TV를 개발하며 현재까지도 ‘생활가전은 LG’라는 공식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럭키와 금성의 양대 구조로 이어지던 회사는 지금의 LG그룹으로 통합돼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정보통신 뿌리내린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SK그룹은 1953년 최종건 창업회장이 세운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을 모태로 한다. 선경직물은 1969년 원사 공장을 설립 섬유 사업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최 창업회장의 별세로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1973년 회사를 승계한다.
최 선대회장은 이후 제조업 중심 구조에서 에너지·정보통신 중심의 첨단 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대표적으로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를 인수해 석유화학 부문을 그룹 주력으로 끌어올렸으며, 1984년 북예멘 유전 개발을 성사시켜 한국 최초의 해외 유전 개발 성공이라는 이정표를 남겼다.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한 것도 그의 혜안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94년 최 회장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해 그룹의 성장 동력을 다각화했다. 이는 이후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등으로 확장되는 정보통신기술(ICT) 사업군의 기반이 됐다. 그는 이미 1980년대부터 미국 현지에 미주경영실을 설치해 글로벌 IT 흐름을 분석하고, 이에 맞춘 전략을 세운 바 있다. 1997년에는 그룹명을 SK로 변경해 에너지와 통신을 양대 축으로 하는 대기업 체제를 확립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