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韓경제, 어디까지 왔나?] 광복 이후 현재까지 재테크 변천사

저축은 경제성장의 핵심 수단
저금리 기조 확산 등으로 위상 약화
부동산도 대표적인 자산축적 수단
전세자금보증 등 금융상품 등장
주택복권도 1990년대 인기몰이
로또 등장 이후 단종, 인생역전 상징은 여전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숱한 대내외적 파고를 뛰어넘으며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 과정에서 목돈을 손에 쥐고픈 이들의 재테크 방식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게 일상화됐지만 불과 반세기 전 만해도 자산축적 방식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이같은 재테크 변천사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재무부에서 저축의날에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발행한 표어. 매미처럼 후회 말고 개미처럼 저축하자와 발행처가 인쇄돼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고사리 손으로 붉은색 돼지 저금통에 100원짜리 동전을 모았던 기억. 가장 고전적인 재테크 방식은 근검절약으로 대표되는 저축이다. 사실 저축은 1950년대부터 정부가 강제한 측면도 있는데, 이는 6·25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13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에 따르면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정부는 자금 조달을 위해 저축을 더욱 강조했다. 이 시기, 저축의날이 제정되고 정기예금 금리를 최고 30%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당시 저축은 국가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소비와 내수 활성화에 방점이 찍히자, 저축의날은 2016년 금융의날로 명칭이 바뀐다. 현재와 같은 저금리 시대, 재테크 수단으로 저축의 위상은 분명 예전만 못 해졌다.  

1978년 대한주택공사에서 잠실고층아파트를 분양하며 작성한 관리계약서 및 입주자 유의사항 안내서 앞표지. 문서 제목과 대한주택공사 문구 등이 인쇄돼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서울에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을 모아야 할(주거실태조사·2021) 만큼 부동산은 가장 대표적인 자산축적의 상징이다. 1978년 당시 서울 송파구 잠실 장미아파트(총 3402가구) 1차 분양 안내문을 보면 28평형 분양가는 약 1643만원, 39평형은 약 2289만원, 46평형은 약 2700만원, 56평형은 약 3337만원 수준이었다. 현재 아파트 값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전셋값이 치솟고 대출 문턱도 높아지자, 분양가의 70%, 최고 3억원까지 대출을 해주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중도금 연계 모기지론이 등장했다. 제2금융권의 고금리 전세자금 대출에서 1금융권의 저금리로 갈아탈 것을 권유하는 징검다리 전세자금 보증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1977년 3월 착공 당시 한국증권거래소에서 영문으로 제작한 여의도 신축 건물의 안내 팸플릿. 건물의 간략한 소개, 건립 개요, 공사기간 등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주식, 채권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재테크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선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에서 12개 기업의 주식이 거래된 것이 그 시작이라고 역사박물관 측은 전했다. 1963년 당시 대한증권거래소에서 발행한 주권은 금 5만원권이었는데, 100주권으로 주당 가격은 500원이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유리하게 생각하는 재테크 수단도 주식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유리한 재테크 방법을 묻는 설문에서 주식이 25년 만에 부동산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전체 응답자의 31%가 주식을 꼽았고, 부동산(아파트·주택·땅·토지)이 23%로 뒤를 이었다. 그 다음 적금·예금(20%), 가상자산(9%) 등의 순이었다.

주택복권은 1969년 9월 15일 무주택 군경 유가족, 국가유공자, 파월장병의 주택기금마련을 목적으로 한국주택은행(현 한국은행)이 발행했다. 사진은 제1회 주택복권으로 액면가 100원, 1등 당첨금은 300만윈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일확천금을 바라는 이들에게 복권만한 것이 또 있을까. 인생역전의 수단으로 꼽히는 복권도 여러번 옷을 갈아입었다. 1990년대 매주 일요일마다 국민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가슴 졸이며 지켜본 건 바로 주택복권 추첨 생방송이었다. 로또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주택복권은 1969년 9월 첫 선을 보였다. 종이 쪼가리 한장으로 집 한채 값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 이름 붙여진 주택복권. 1회차 복권 1장 가격은 100원,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고 한다. 90년대 주택복권 당첨자 추첨은 생방송 출연자들이 0에서 9까지 숫자가 적힌 회전하는 원형 과녁에 화살을 쏘는 방식이었다. 사회자가 “준비하시고…모두 함께 쏘세요”라고 외치면 출연자들이 동시에 손에 쥔 버튼을 눌러 화살을 과녁으로 날렸다. 방송 중간중간 인기가수들의 축하 공연도 빠질 수 없는 볼거리였다. 2006년 3월 24일 37년간 서민들을 웃고울린 주택복권은 마지막 1473회차 판매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복권 하나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복권 한장에는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꿈꾸는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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