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 들어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중장년층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양산이 국민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점심시간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양산을 든 남성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30대 직장인 A씨는 “남자가 양산을 쓰는 건 이상해 보인다는 선입견이 있어 망설였지만, 한번 써보니 효과가 탁월해 애용하고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우산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B씨는 지난해처럼 비가 자주 올 것에 대비해 고가 브랜드의 레인부츠를 장만했다. 그런데 올해는 비가 국지성으로 퍼붓는 바람에 레인부츠를 신고 출근하면 직장이 있는 서울은 맑은 경우가 많아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유통 시장에서 소비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다. 양산은 남녀노소 모두 애용하는 생존 아이템이 됐으며,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 등을 즐기며 더위를 피하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이같은 트렌드는 수치로도 확인 가능하다. 라이프스타일 전문몰 LF몰에서는 6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남성 양산’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4배 증가했다. 이에 맞춰 LF가 전개하는 닥스 남성 우양산의 남성 구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뛰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도 지난달 남성 소비자의 양산 검색량이 전년 동월 대비 1000% 이상 폭증했다. 남성 패션 플랫폼 4910에서는 최근 2개월간 양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954% 급증했으며, 검색량도 467% 늘었다.
이처럼 양산 수요가 남성까지 확산하자 유통업계도 폭넓은 취향에 부합하는 무채색 양산과 우산 기능까지 갖춘 우양산을 다채롭게 선보이며 유행에 대응하고 있다. 닥스 액세서리는 양산 디자인 스타일 수를 전년 대비 18% 늘렸으며, 레이스나 자수를 대신해 고급스러운 패턴과 귀여운 캐릭터 그래픽 등으로 다양화한 것이 특징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스페인 우양산 브랜드 애즈펠레타의 팝업스토어를 업계 최초로 진행해 다양한 사이즈의 우양산을 소개했다.
전국 각지 휴양지로 피서를 가거나, 해외 여행을 떠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여름은 오프라인 유통의 계절적 비수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올해는 폭염으로 인해 몰캉스(몰+바캉스)를 즐기려는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달 넷째 주 주말(26∼27일)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은 몰캉스족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롯데백화점(16.0%), 신세계백화점(15.1%), 현대백화점(15.8%) 등 백화점 3사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신선식품 등 장보기 목적성 방문이 주를 이루는 대형마트의 경우 같은 기간 매출이 5∼10%씩 줄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폭염에 대형마트를 방문하기보다 이커머스로 장을 보거나,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외식을 선택한 소비자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이 지난달 수도권 소비자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름철 농식품 소비 행태 변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9%가 폭염과 장마의 영향으로 농식품 구매처를 오프라인 대형마트·슈퍼마켓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해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하는 기후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
김장철에 대비해 유통업계가 배추 물량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배추 1포기 시세는 지난 13일 6871원에서 14일 7023원으로 하루 새 52% 뛰어 7000원을 돌파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폭염∙폭우 영향으로 농축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생산자물가가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 이는 지난 1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품목별로 보면 시금치(171.6%), 배추(51.7%), 쇠고기(6.5%), 돼지고기(4.2%) 등의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