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급과 수요의 격차가 벌어지는 가운데 헬스케어 인공지능(AI)의 획기적인 의료 보조 기술을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의료진과 환자에 대한 신뢰도를 적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필립스코리아는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미래건강지수(Future Health Index) 2025 한국 보고서’의 주요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시작돼 올해로 발간 10주년을 맞은 필립스 미래건강지수 보고서는 헬스케어 시스템이 직면한 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 기술을 시사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6개국 1900명 이상의 의료 전문가와 1만600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헬스케어 AI에 대한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 격차를 조명했다. 한국이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의료 현장은 진료 지연과 행정 비효율로 인한 부담을 겪고 있다. 국내 환자의 53%가 전문의 진료 대기를 경험했으며, 평균 대기 기간은 40일에 달했다. 또한 의료 전문가의 91%는 불완전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환자 데이터 문제로 인해 임상 시간이 낭비된 경험이 있다고 밝혔으며, 이들 중 절반(51%)은 교대 근무당 45분 이상, 의료진 1인당 연간 4주 이상의 근무 시간이 손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료 전문가들은 AI를 올바르게 구현하면, 환자 진료 수용성 확대(92%), 대기 시간 단축(91%),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의료 개입(89%), 반복성 작업의 자동화(85%) 등 의료 업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더불어 AI 기반 예측적 분석과 원격 환자 모니터링 등을 통한 예방 의료의 혁신으로, 조기 개입을 통한 생명 구제(90%), 급성 또는 응급 의료 처치 감소(86%), 병원 입원율 감소(84%)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헬스케어 AI에 대한 인식에는 의료진과 환자 간 차이가 있었다. 국내 의료진의 86%는 AI가 환자 치료 결과를 개선할 것으로 전망한 반면, 이에 대한 환자의 긍정 응답 비율은 60%에 그쳤다. 환자들은 기술 도입이 확대되면서 의사와의 대면 시간이 줄어들 것(46%)을 우려했고, 의료 전문가들은 AI 오류 발생 시 법적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점(74%)을 걱정했다. 또한 의료 전문가의 84%가 새로운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필요를 반영해 설계되었다고 느끼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이번 보고서는 헬스케어 AI에 대한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고민했다. 환자들은 AI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더 긍정적으로 만드는 혜택으로, AI로 인해 실수가 덜 발생한다면(50%), 의료비를 더 저렴하게 만들어 준다면(43%), 건강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면(40%) 등을 꼽았으며, 의료진은 AI에 대한 신뢰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AI 활용법 및 제한 사항에 대한 명확한 지침(39%)과 AI 활용 관련 법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36%) 등을 원했다.
이에 필립스는 헬스케어 AI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사람 중심의 AI 설계 ▲인간과 AI의 협력 강화 ▲효능과 공정성 입증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다양한 분야 간 파트너십 구축을 제안했다.
필립스는 헬스케어 AI에 대한 신뢰도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전체 매출의 9.4%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으며, 특히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건강지수 역시 헬스케어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산업간 협업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 ▲MR 스마트스피드 프리사이즈 ▲CT5300 ▲EPIQ CVx 등 주요 AI 신기술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최낙훈 필립스코리아 대표는 간담회에서 미래건강지수 보고서 10주년의 의의와 한국 보고서의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미래건강지수 2025 한국 보고서와 필립스의 사례가 헬스케어 AI 신뢰 구축과 혁신 가속화를 위한 의미있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의료진과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솔루션 만들고, 건강한 사회 만드는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간담회의 두 번째 연사로 나선 김은경 연세대 용인세브란스병원 원장은 의료 AI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병원의 실증 사례를 소개했다.
김 원장은 디지털 혁신병원인 용인세브란스병원이 의료 AI 솔루션 도입을 통해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 의료진의 업무 효율이 개선된 구체적 성과를 공유하며, 국내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언했다.
일례로, 이 병원은 ‘흉부∙유방 엑스레이 판독보조 AI 솔루션’을 도입해 영상 판독의 정확도를 90% 이상으로 향상시켰다. AI가 촬영된 영상을 토대로 비정상 정도를 % 단위의 이상점수(Abnormality Score)로 나타내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속대응시스템(RRS)을 통해 환자의 심박동수, 체온, 호흡수, 산소포화도 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 의료진에 호출함으로써 사망률이 감소하는 효과가 났다.
김 원장은 “AI 도입의 성공은 기술 자체보다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 구축에 달려 있다”며 “임상 현장에서 충분히 검증된 사례와 명확한 근거를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의료진의 업무 효율성과 환자 만족도를 동시에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