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심 곳곳을 거닐다 보면 중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 심리를 담은 현수막이 걸린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9월 말부터 시작된 중국인 무비자 입국과 맞물려 이처럼 혐중 정서를 조장하는 목소리가 온∙오프라인 상에서 힘을 얻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상권에서는 과격한 표현을 쓰는 집회∙시위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단일민족을 강조해 온 한국의 역사와 편 가르기를 정쟁에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혐오 심리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정부 차원의 규제를 통해 혐오 발언을 금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처벌 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게 문제다.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유엔은 2019년 6월 ‘혐오표현에 관한 유엔 전략 및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혐오표현이란 종교∙민족∙국적∙인종∙피부색∙혈통∙성별과 같은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를 근거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경멸하거나 차별하는 언어를 사용해 말 글 행동으로 공격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을 뜻한다.
실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혐오표현을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하게 처벌한다. 대표적으로 홀로코스트를 겪은 독일의 경우 일반평등대우법(AGG)을 통해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 다양한 사유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한 대우를 보장한다.
일본은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꾀한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을 2016년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차별의식을 조장할 목적으로 생명과 신체 등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뜻을 알리거나 현저히 모욕하는 것을 차별적 언동으로 정의하고 용인하지 않음을 선언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사실상 혐한시위 억제법으로 통한다. 혐오발언을 직접적으로 금지하거나 벌하는 조항은 없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입법 취지에 맞게 제도 보완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혐오발언을 규제할 만한 마땅한 법률이 없어 규제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 현행법상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은 모두 피해자가 특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혐중시위가 거세지는 것을 계기로 입법 장치가 만들어지려는 모습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허위 사실을 적시해 특정 국가나 국민, 인종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경우 기존 형법에 규정된 명예훼손 및 모욕과 동일한 형량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심리가 확산하고 있으며 일부 정치 세력이 정쟁에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 예방 또는 제재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문제라고 진단했다. 다만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가짜뉴스를 정정·규제하는 등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과거보다 더 많은 의견과 가치관이 충돌하고 이에 따라 집단 편 가르기가 여러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민족이라고 교육을 받아왔고 북한과 대치를 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도리어 인정을 못하는 흐름으로 변화했다”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분노는 서로 잘못을 인정해 사과를 하면 풀어질 수 있는 감정이라면 혐오는 이유를 막론하고 싫은 것이기 때문에 한쪽 집단이 전멸할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며 “최근 중국, 캄보디아에 대한 혐오 정서의 경우 정쟁이 활용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소문을 퍼트리면서 일반 국민들은 굉장한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 사례에 낙인을 찍어서 정쟁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최소한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것에 대해 단호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대우교수는 “혐중시위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예전에 일본에서 유행한 혐한시위를 극우세력이 한국으로 수출한 것이 혐중시위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은 처벌조항이 없지만 이 법을 토대로 다른 실정법에서 혐오발언이나 행동에 처벌을 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