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온 세상이 인공지능(AI)이다. 어느 분야든 AI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기업들은 실무 현장에서 AI 활용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AI를 얼마나 잘 다루고,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 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법조계도 예외는 아니다. 법률과 AI의 결합이 가속하고 있다. 복잡한 계약서 초안 작성부터 판례·법령 검토까지 AI가 ‘법률 비서’ 노릇을 하고 있다. 법률 자문을 도와주는 AI 챗봇도 있다.
AI를 앞세운 리걸테크(Legaltech) 시장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올해 약 340억 달러(47조원)에서 2032년 635억 달러(88조원)에 달하며 연평균 10% 안팎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또 시장조사기관 비지니스리서치 인사이트는 글로벌 리걸테크 인공지능 시장 규모가 2021년 81억 달러(약 10조원)에서 2027년 465억 달러(약 6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리걸 AI 전문기업 BHSN은 국내 리걸테크 대표주자다. BHSN은 현재 통합 계약관리시스템, 리걸 리서치 에이전트로 구성된 비즈니스 리걸 AI 솔루션 '앨리비(allibee)'를 운영하며 다수의 대기업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을 토대로 일본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글로벌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전문 변호사가 AI 기업 창업한 이유
임정근 BHSN 대표는 과거 국내 대형 로펌 중 한 곳인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며 인수합병(M&A), 해외투자 등 다양한 기업 자문을 수행했다. 이후 일본 대형 로펌에 파견돼 다국적 거래와 해외 법률 자문을 담당하던 중 실무 현장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한계를 체감했다. 국가별 규제나 계약 구조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협상이나 의사결정보다 정보 탐색과 정리에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비효율이 이어졌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법률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AI로 처리한다면 기업의 법무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이에 임 대표는 2020년 기업 법률시장에서 기회를 파악하고 리걸 AI 전문기업 BHSN을 설립했다. 임 대표는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은 계약과 규제 위에서 이뤄진다. 법률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게 곧 비즈니스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라며 법률 AI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사명은 법률 업계 용어인 ‘변호사님(BHSN)’의 자음을 딴 것으로, 법률 전문성과 기술 역량을 결합해 기업 법무와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철학을 담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일잘러’ 만들어주는 앨리비
BHSN은 지난해 1월 구독형 리걸 AI 솔루션 앨리비를 정식 출시하며 리걸테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AI를 통해 기존 업무의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뜻의 ‘AI + Liberate’에서 파생된 이름처럼 앨리비는 기업 법무의 복잡한 과정을 간소화하고 업무 속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계약서 작성에서 검토·승인·결재·보관, AI 검색까지 계약 전 과정을 지원하는 ‘앨리비 계약관리솔루션(CLM)’ ▲기업 법무팀의 자문·송무 관리를 지원하는 ‘앨리비 기업법무시스템(ELM)’ ▲국내외 법령과 판례, 정부 정책자료 등 방대한 전문 지식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 리서치를 제공하는 ‘앨리비 비즈니스 에이전트’로 구성됐다.
앨리비가 번거롭게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니 자연스럽게 기업의 생산성과 업무 효율성은 크게 올라간다. AI가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앞다퉈 앨리비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 BHSN은 CJ제일제당, 한화솔루션, 애경케미칼 등 국내 주요 대기업에 앨리비를 공급하며 고객사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BHSN은 “앨리비를 도입한 기업들은 계약서 검토 시간이 평균 67% 이상 단축되고, 반복 검토 항목의 자동화 기능을 통해 누락 조항이나 오류 발생률이 많이 감소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BHSN은 ‘리걸(문서)은 곧 비즈니스와 직결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모든 법률 문서를 데이터화해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와 품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약서·정책·규제 등 방대한 법률 정보를 AI가 구조적으로 분석해 근거 중심의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기업이 복잡한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BHSN은 법률 데이터를 실무 현장에서 실제 활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해 법무와 비즈니스의 경계를 잇는 기술 기반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축적된 법률 데이터를 중심으로 아시아 각국의 법제와 산업 환경을 연결하는 리걸 AI 허브로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법률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아시아 최고 리걸 AI 기업 꿈꾼다
국내 시장에 안착한 BHSN의 시선은 글로벌 시장으로 향한다. 국내에서 검증된 리걸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아시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BHSN의 최우선 목표는 일본이다. BHSN은 지난 6월 일본 리걸테크 기업 ‘부스트드래프트(BoostDraft)’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일본 시장 확대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스트드래프트는 일본 내 주요 로펌과 대기업이 사용하는 계약서 자동화 솔루션 운영 리걸테크 기업이다. 양사는 이번 협력을 통해 법률 문서 작성·리뷰 기능 고도화와 현지화 전략을 공동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법률 체계와 문서 구조가 유사해 기술 적용의 현실성이 높다. 성장 잠재력도 풍부하다는 평가다. 야노경제연구소 전자계약서비스 시장 조사에 따르면 일본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2018년 39억엔(365억원)에서 2025년 395억엔(3700억원)으로 10배가량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BHSN은 일본을 리걸 AI 글로벌 확장의 첫 교두보로 삼고 현지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정근 대표는 일본 대형 로펌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화를 직접 주도하고 있으며, 연내 계약서 리뷰·법률 질의응답 등 리걸 AI 특화 기능을 현지 시장에 맞춰 선보일 계획이다. BHSN은 일본 법인 설립도 마쳤다.
BHSN은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거점 지역을 늘려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다. 각국의 법률 데이터를 연결 및 표준화해 아시아 리걸 AI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