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가 담긴 팩트시트가 지난 14일 최종 확정되자 국내 주요 산업계가 일제히 안도감을 표했다.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대 수출 비중이 큰 업종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무관세 효과가 사라지고 향후 정책 변수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분위기다.
관세가 15%로 낮아진 자동차 업계는 우선 한숨을 돌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어려운 협상 환경 속에서도 타결까지 노력한 정부에 감사한다”며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 대응과 품질·브랜드 경쟁력 강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이번 합의로 현대차·기아가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납부한 약 1400억원의 관세 중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업계의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FTA에 따른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고 관세 인하의 적용 시점이 명확히 적시되지 않은 데다가, 기존 ‘0%→ 15%’로 부담 자체가 새롭게 생긴 점은 남은 과제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은 “합의 이행을 위한 대미투자기금법이 국회에서 문제 없이 처리되길 바란다”며 “관세 15% 시대에는 국내 생산 기반이 약화될 위험이 있어 정부의 생산 촉진 세제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사실상 가장 큰 수혜업종으로 평가된다. 팩트시트에 미국 해군 함정과 핵추진 잠수함의 국내 건조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이 담기면서다.
한화오션을 보유한 한화그룹은 “이번 합의를 환영하며 정부의 안보 정책 기조를 적극 지지한다”며 “거제조선소 투자·확장과 미국 현지 조선소 지원을 통해 한미 조선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팩트시트가 조선소 현대화, 인력 양성, 유지·보수·정비(MRO) 협력까지 포함한 점도 시장 기대를 키우는 대목이다. 특히 그동안 해외 건조가 사실상 금지됐던 미국 해군 전투함 건조·부품 생산 영역까지 협력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수조원대 신규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최혜국 대우로 단정할 순 없지만, 최소한의 보호막이 만들어졌다”며 “대만과의 협상 동향에 따라 변동성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빅테크의 수요를 고려하면 메모리에 과도한 관세를 매기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장기적 부담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업계의 경우 분위기가 좋지 않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50% 고율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업계는 “사실상 수출길이 막힌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미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이번 합의로 산업계는 일단 ‘관세 쇼크’는 피했지만, 미국의 향후 정책 방향과 경쟁국 협상 결과에 따라 다시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전반에서는 “최악은 피했지만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