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17일 북한에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군사분계선(MDL) 기준선 설정 문제를 논의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자는 취지다.
김홍철 국방정책실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MDL 표식물 상당수가 유실돼 북한군이 작업 과정에서 MDL을 넘나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군사적 오해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설치된 1천200여개의 MDL 표식물 가운데 현재 확인 가능한 표식물은 약 200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해온 대북 정책 목표이기도 하다. 북한이 이번 제안에 응할 경우, 2년 넘게 끊긴 소통 채널이 복원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남북은 과거 판문점 연락채널과 동·서해 군통신선을 운영해왔지만, 북한은 2023년 4월 이후 모든 채널을 차단한 상태다. 마지막 남북 군사회담은 2018년 10월 열린 제10차 남북장성급회담이었다.
김 실장은 북측 카운터파트를 특정하지 않았으나, 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한 국방성에서도 유사 직급의 당국자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10차 장성급회담에는 김도균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관과 북한 안익산 중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여했다. 2014년 판문점에서 진행된 비공개 군사당국 접촉에서는 류제승 당시 국방정책실장과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이 만난 바 있다.
다만 북한이 즉각 화답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판단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기존 합의 이행을 사실상 중단했고, 북한은 DMZ 북측 지역에 병력과 대전차 방벽을 추가 배치하는 등 대남 강경 행보를 이어왔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역시 지난 7월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회담 의제인 ‘MDL 기준선 재설정’에 북한이 당장 관심을 보일 이유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측의 국경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남측의 경고사격은 북한 입장에서 남측이 조성한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즉각적인 충돌 위험이 크지 않은 이상 북한이 대화에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정전협정을 기반으로 설정된 MDL 자체가 협상 문턱을 높인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한국을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유지해온 만큼, MDL 문제를 남측과 논의 대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최근 중국·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강화에 집중하고, 미국의 대화 제안도 거듭 외면하는 흐름을 고려할 때 한국의 군사회담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