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22일 개막 첫날 ‘G20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선언’을 채택했다. 정상선언 채택이 회의 마지막 날이 아닌 첫날에 이뤄진 것은 이례적이다. 회의에 불참한 미국이 선언문에 반대한 상황에서 남아공이 강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빈센트 마궤니아 남아공 대통령실 대변인은 요하네스버그 나스렉엑스포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상선언이 회의 시작과 동시에 컨센서스로 채택됐다”며 “이번 회의에서는 이를 첫 의제로 올려 즉시 의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역시 개회 발언에서 “압도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며 선언문 채택을 공식화했다.
남아공 외무부는 총 30쪽, 122개 항으로 구성된 ‘G20 남아공 정상선언’을 공개했다. 정상들은 문서에서 “G20이 다자주의 정신에 따라 합의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든 회원국의 동등한 참여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한 “2026년 미국, 2027년 영국, 2028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문구를 통해 2028년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명시했다.
선언문은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팔레스타인 영토,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서 ‘정당하고 포괄적이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무역 분야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 충돌하는 일방적 무역 관행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담았으며, 기후 변화 대응, 재생 에너지 확대, 저소득국 부채 부담 문제 등 미국 행정부가 꺼리는 의제들도 포함됐다.
미국은 남아공이 백인 소수집단을 박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의제 조율 과정에서 남아공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이번 회의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으며, 의장성명만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남아공 정부에 전달했다. 이 같은 미국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첫날 선언문 채택을 강행해 의장국으로서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의는 ‘연대·평등·지속가능성’을 주제로 23일까지 진행된다. ‘포용적 성장’, ‘회복력 강화’, ‘정의롭고 공정한 미래’ 등 세 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다만 폐막식에서 차기 의장국인 미국에 의장직을 공식 이양하는 절차는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남아공이 미국이 제안한 주재 미국 대사대리의 참석을 거부한 데다, 라몰라 외무장관이 “대사대리에게 권한을 이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이 국가원수급 대표나 특사를 파견하지 않는다면 의장 인계 행사 자체가 생략될 수 있다.
이번 회의는 G20 ‘트로이카’(직전·현재·차기 의장국) 구성국 중 한 나라가 정상회의에 아무 대표를 파견하지 않은 최초의 사례가 됐다.
한편,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들은 회의장 별도 공간에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에 대한 의견을 논의했다. 이후 일본·캐나다 정상까지 참여한 공동성명에서 “무력에 의한 국경 변경은 수용될 수 없다”며 미국의 계획에 “추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사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존중하는 유엔 총회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제시한 평화안에는 러시아가 통제하지 않는 도네츠크·루한스크 일부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양보하고 철군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