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씬] 꼭두새벽에 술없이 클러빙, 커피 브레이크... 젠지는 아침에 논다

밤 대신 아침을 선택한 새로운 모닝 레이브 문화가 젊은 층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오비맥주 버드와이저가 진행한 얼리버드를 찾은 사람들 정희원 기자

요즘 뭐가 뜨는지 모르겠다고요? 지금 세대가 열광하는 ‘새로운 장면’을 대신 찾아가봅니다. 변하는 세대, 달라진 감각. 지금 세상의 ‘새로운 장면’을 기록합니다. <편집자주>

 

“모닝 레이브 파티에 참석하려고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어요.”

 

서울 이태원의 주말 오전 7시 풍경이 달라졌다. 본래 지난 밤을 한껏 즐기고 집으로 향하거나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엔 이 시간 한껏 치장하고 이태원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의 아침이 길어졌다. 재미있는 일은 밤에 일어난다는 고정관념도 깨졌다. 요즘 MZ세대는 아침에 논다. 이들의 아침은 밤보다 뜨겁다.이를 ‘모닝레이브(morning rave)’라고 한다. 아침+광란의 파티를 의미하는 레이브와 결합된 신조어다. 말 그대로 아침에, 술 없이 클럽이나 카페에서 신나게 출근하고 직장이나 학교로 향한다.

 

국내에 모닝레이브를 대중화한 ▲서울모닝커피클럽(SMCC)을 필두로 ▲더 제로 클럽 ▲아침(Achim) 등 아침을 여는 모임들이 속속 입소문을 타고 있다. 아침에 노는 게 이제는 힙스터의 상징이 됐다. 이들의 SNS를 통해 열리는 커피챗·모닝댄스 등 아침 모임은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한다. 가고 싶어도 참가가 어려울 정도다.

 

이런 트렌드가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주류업체·패션브랜드 등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도 모닝 레이브에 주목하고 있다. 러닝을 강화하는 디아도라, 디스커버리 등도 합세했다. 하위문화에서 이제는 메인스트림으로 확장된 셈이다.

오비맥주 버드와이저가 진행한 얼리버드를 찾은 방문객들이 모닝 파티를 즐기고 있다. 정희원 기자

최근 버드와이저가 연 이태원 모닝레이브 파티 현장을 찾았다. 오전 7시에 시작되는 파티를 위해 이른 시간부터 입장을 위해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대다수 방문객들은 버드와이저의 SNS를 통해 파티 정보를 얻었고 사전 예매 오픈 후 얼마 되지 않아 품절됐다. 현장 구매도 운영했지만 금방 ‘솔드아웃’돼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모닝 레이브가 대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는 화이트와 실버 드레스코드를 맞춘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DJ가 음악을 틀고 바텐더가 무알코올 칵테일을 만든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취기가 없다. 담배 대신 옥상에서 비눗방울을 분다. 

dj 현희(왼쪽)가 디제잉에 나서고 있다. 아침에 파티 DJ를 한 것은 DJ에게도 이례적인 경험이다. 정희원 기자

이날 만난 DJ 현희는 “이렇게 아침 일찍 디제잉을 한 적은 사실 없었다”며 “아티스트와 협업해 뮤직비디오를 찍거나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이 시간에 출근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술 없이 이렇게 신나게 놀 수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심아일랜드, 지소쿠리클럽 등 인기 밴드들도 아침 공연에 나섰다. 심아일랜드 보컬 심아일은 “일찍 일어나는 자가 공연을 본다. 렛츠 고”라며 포문을 열었다. 지소쿠리클럽 멤버들도 “이른 아침부터 경쾌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취지가 좋았다”며 “아침부터 목을 풀고 공연을 하는 모든 과정이 새로웠다. 주로 저녁에 관객들을 만났지만 아침부터 에너지를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솔직히 행사장의 주류는 트렌드에 워낙 민감한 30~40대일 줄 알았다. 하지만 공간을 채운 것은 20대였다. 이날 방문객들은 요즘 떠오르는 모닝 레이브가 궁금해 현장을 찾았다.

 

서울 성북구에서 온 서파랑(27) 씨와 경기도 김포에서 현장을 찾은 이효정(26) 씨도 “모닝레이브에 대한 개념은 알았지만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 처음 찾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날 행사를 위해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다고.

 

홍대에서 밤새 파티를 즐기고 아침까지 이어가는 20대 방문객도 있었다. 고양에서 온 김미래 씨는 “홍대에서 시간을 보내며 밤을 새고 놀러왔다”며 “모닝 레이브가 애프터 파티의 개념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흥미롭다”고 소감을 전했다.

방문객들이 모닝레이브 현장에서 인증샷을 촬영하고 있다. 정히원 기자

아침 파티가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클럽에서 밤을 새울 필요가 없고 첫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 1~2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짧은 친목을 즐길 수 있고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매력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같은 변화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의 생활패턴이 전반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모닝레이브 같은 다양한 형태의 아침 문화가 등장하고 확산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사실 모닝 레이브는 한국만의 트렌드는 아니다. 이미 10년 전 미국·호주 등에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원조는 2013년 뉴욕에서 시작된 ‘데이브레이커’다. 곽 교수는 “미국 등에서는 밤 외식이나 음주보다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하다. 이렇다보니 아침 시간대 활동이 오래 전부터 일반적이었다”며 “반면 한국은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야간 학습 문화, 대학에서도이어지는 공부 패턴과 저녁 술자리 등 밤에 집중된 생활패턴이 강하다보니 그동안 아침 활동은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흐름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밤 술자리가 줄어들고 개인 시간이 늘면서, 20~30대가 달라졌다. 곽 교수는 “저녁에 일찍 귀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고 이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즐기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심아일랜드가 얼리버드 파티에서 공연하고 있다. 정희원 기자

과거에 비해 유연해진 근무 시간도 모닝레이브를 가능케 하는 요소다. 곽 교수는 “과거에 비해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재택근무도 늘지 않았나”라며 “아침을 개인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더 커지다보니 모닝 레이브 문화도 확산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자기효능감과 성취감을 높여주는 것도 확산 요인으로 꼽힌다. 곽금주 교수는 “함께 달리기를 하든, 파티에서 사교활동을 하는 것이든 아침에 뭔가를 해냈다는 것 자체가 밤 시간보다 성취감이 크고 만족도가 높다”며 “이런 성취감을 계속 유지하려는 동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모닝레이브 같은 아침활동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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