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원이 지난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사태와 관련해 모든 가입자에게 1인당 10만원씩 총 2조원이 넘는 보상안을 제시했다. SK텔레콤은 지금까지 정부 기관이 내놓은 구제방안을 모두 불수용했고, 이번 건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피해 규모가 더 큰 쿠팡에 내려질 청구서에 적힐 금액이 어느 정도일지도 관심이 쏠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18일 집단분쟁조정회의를 열어 SK텔레콤이 신청인에게 통신요금 할인 5만원과 포인트 5만원 등 총 10만원 상당의 보상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지난 7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8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처분 내용 등을 볼 때 SK텔레콤 해킹 사고로 개인정보가 유출돼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과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례의 1인당 보상액이 통상 10만원 수준이었던 점과 전체 피해자 보상의 필요성, 조정안 수락 가능성을 높일 방안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5월 9일 소비자 58명이 SK텔레콤에 대해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데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SK텔레콤이 이번 조정 결정을 수락하면 조정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동일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상계획서 제출을 포함한 관련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체 유출 규모가 알뜰폰을 포함해 총 2300만명에 달해 보상액은 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위원회는 기업의 선제적 보상을 장려한다는 측면에서 SK텔레콤이 제공한 통신요금 할인 금액은 공제하도록 결정했다. SK텔레콤은 지난 8월 통신 요금을 50% 할인하고, 연말까지 가입자 전원에게 통신 데이터 50GB를 추가 제공하는 내용의 ‘고객감사패키지’를 시행한 바 있다.
SK텔레콤 측은 조정안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결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수락 여부를 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집단분쟁조정 제도상 SK텔레콤이 보상 방안을 수락할 의무는 없다. 지난해 영업이익(1조8234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라는 점에서 불수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만약 SK텔레콤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민사소송을 통해 다툼을 이어가야 한다.
쿠팡의 경우 정보유출 피해 규모가 3370만명으로 더 많아 역대급 보상금과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복수의 로펌이 쿠팡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미국 법원에 쿠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에서 주주들의 집단소송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국회 청문회에 연달아 불출석하며 ‘맹탕 청문회’라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의 압박 수위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영업 정지 처분을 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사면초가에 놓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회 5개 상임위 연석청문회를 오는 30∼31일 개최하기로 했다. 김범석 의장이 또 불출석할 경우 고발 조치와 국정조사, 동행명령장 발부 등을 통해서 참석을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SK텔레콤 조정 절차에 참여한 신청인 측 대표 이철우 변호사는 이날 한 방송에서 “대통령께서 집단소송제 도입까지 언급했는데, 집단소송에 가기 전에 자발적인 노력으로 조정이 성립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수반되면 쿠팡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