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한국무역협회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수출액은 6836억원으로 세계 6위이며, GDP 대비 수출 비중은 36.6%로 주요 20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 산업이 내수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보니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 시장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있어 후발주자는 빈틈을 찾기 어렵다는 점. 그런 측면에서 이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그에 따른 중동 사태는 새롭게 공략할 수 있는 ‘틈’과 같다. 특히 전쟁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군수 및 방위산업(방산), 전쟁 이후 해당 국가 및 지역의 재건과 관련된 건설업 등이 그렇다. 전쟁 지역에 쏟아진 폭격과 그에 따른 피눈물이 해당 산업계에게는 새로운 젖줄이 된다.
1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이번 전쟁을 통해 ‘K-무기’의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국내 방산업계가 중동 걸프국을 포함한 세계의 여러 국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가 2022년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지대공 유도미사일 ‘천궁-Ⅱ’가 최근 이란의 UAE 공습 때 96% 정확률로 적 미사일을 격추하며 화제가 됐다.
해당 무기는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협력해서 생산하는데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천궁-Ⅱ의 인도 일정을 앞당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UAE는 30여 기 추가 공급을 요청했다. 루마니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서도 방공망 강화를 위한 요격 체계 후보로 천궁-Ⅱ가 제시됐다는 전언이다.
아울러 최근 미국과 이란이 휴전 기류가 돌면서 국내 주요 건설사들도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대우건설, 현대건설, GS건설, DL이앤씨, 삼성물산 등 건설주들이 동반 상승했다. 전쟁 여파로 제동이 걸렸던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가 재개되고,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중동 지역의 재건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해석이다.
이번 전쟁의 발발지가 중동이라는 특수성으로 주목 받는 분야도 있다. 원유와 가스 등 생산시설들이 폭격 받으면서 화석연료의 공급 우려가 짙어진 가운데 풍력과 태양력 같은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계가 힘을 얻고 있는 것. 효율성 측면에서는 화석연료를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중동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휘둘리는 현실을 조금씩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ESS를 확대해 전력 조달의 안정성과 자립도를 높이면 국제유가 급등의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같은 이유에서 전기차 및 수소차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배터리 업계가 ESS를 전기차 수요 둔화의 대안이자 미래 성장축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기름값에 대한 부담으로 대중교통에 대한 수요 역시 늘었는데, 전기로 운행되는 국내 고속철도인 KTX, SRT, KTX-이음, ITX-새마을 등의 올해 1분기 이용객 숫자(4211만명)는 역대 분기 최다를 찍었다.
또한 비닐과 플라스틱도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종이 포장자재 등을 만드는 제지업계도 생산 물량을 늘리는 중이다. 이달초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중동 전쟁 이후 종이 포장재 구매 관련 상담 문의는 30∼40% 증가했다. 그러면서 한창제지, 깨끗한나라, 한국제지 등 제지주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대체 플라스틱과 바이오 기반 소재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친환경 프리미엄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원재료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도 평가된다.
이처럼 전쟁이 다른 나라의 산업 지형도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는 과거부터 많았다. 한국전쟁을 통해 쓰러져가던 자국 산업을 재건한 1950년대 일본이 대표적이다. 노다니엘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정치경제학 박사의 2010년 한 매체에 기고문에 따르면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1950년 3월까지 5년도 안 되는 사이에 1100개 회사가 도산하고 50만 명 이상 근로자가 직장을 잃었다.
그런데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 7월27일 휴전까지 3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일본은 소위 ‘조선 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 무기 및 병기 생산, 석탄 생산, 자동차 수리, 면직과 마직 등을 통해서였는데 이것이 중공업과 제조업 부활의 기틀이 됐다. 일본경제단체연협회장을 지낸 사쿠라다 다케시가 전후 일본경제 성장의 기반 중 하나로 한국전쟁을 꼽을 정도였다.
한국 역시 1960년대 미국-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 등을 받고, 토목·건설업체들이 베트남 현지의 미군기지와 관련 공사들을 맡으며 성장했다. 다만 파병 군인 및 가족의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점에서 명암이 공존한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