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거 유세 현장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로고송과 함께 율동을 반복하는 거리 중심의 풍경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 선거 유세의 무대는 거리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선거송은 더 이상 오프라인 유세차에만 머무르지 않고 SNS와 숏폼 플랫폼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됐다.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요즘 유권자의 시선이 TV와 거리보다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 등 SNS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치권 역시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식의 유세 전략을 펼치고 있다. 후보자들은 단순히 노래를 트는 수준을 넘어 직접 춤을 추거나 챌린지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유권자와 접점을 넓히고 있다. 기존의 딱딱한 정치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근함과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K-팝 노래 맞춰 너도나도 SNS 챌린지
대표적인 사례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음악을 활용한 챌린지형 유세다. 악뮤 등 대중성이 높은 아티스트의 곡을 배경으로 특정 동작이나 제스처를 반복하는 영상을 제작하며 이를 일반 유권자들도 따라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K-팝 아이돌과 연예인이 신곡 홍보를 위해 활용하던 챌린지 문화가 정치권으로도 확산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와 국민의힘 박완수 경남도지사 후보는 악뮤가 지난 4월 발매해 인기를 끌고 있는 ‘소문의 낙원’에 맞춰 춤을 추는 댄스 챌린지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눈길을 끌었다. 해당 콘텐츠는 수십만 조회수에 달할 정도로 후보들이 올린 영상 중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앞서 박 후보는 SNS에서 인기를 끄는 밈(Meme)인 ‘윤정아 왜요쌤’에 동참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등의 숏폼을 공개하며 30만 뷰를 넘기기도 했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후보와 박은영 전남광주특별시의원 후보는 SNS를 통해 ‘소문의 낙원’ 챌린지를 함께 할 시민을 모집하기도 했다. 고난이도의 노래도 챌린지 대상이다.
조국혁신당 정철원 담양군수 후보는 상반기 최고 유행 챌린지 중 하나인 최예나의 ‘캐치캐치’에 도전했다. 후보들의 잇단 챌린지 도전은 권위적인 정치인의 모습이 아닌 요즘 유행하는 노래나 밈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며 친근한 인물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현장에서 반복 재생되며 이름과 기호를 알리는 기능이 선거송의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영상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 활용되거나 SNS 확산을 위한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었다. 선거송을 활용해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외에도 국민의힘 이장우 대전시장 후보는 숏폼을 통해 영화 촬영 메카 대전, 오월드 동물원 탈출 늑대 생포 등 성과를 홍보했고 제주에서도 김광수 도교육감 후보와 서귀포시 보궐 선거에 나선 고기철 후보가 숏폼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국민의힘 유영일 경기도의원 후보는 친구인 배우 홍경인을 비롯해 SBS 출신 개그팀 졸탄(한현민·이재형·정진욱), 가수 골드 등 연예인이 보낸 응원 메시지를 활용해 온라인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치권이 이처럼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유권자의 정보 소비 방식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은 후보를 직접 검색하기보다 SNS 알고리즘을 통해 후보를 접하는 경험이 많아져 유행하는 챌린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권자들에게 각인되는 효과를 노린다. 숏폼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이용자 관심사에 맞춘 콘텐츠 추천이 이뤄지기 때문에 화제성을 얻은 영상은 계정 영향력과 무관하게 단기간에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확산될 수 있다.
◆“정작 공약은 모르겠다”…정책 검증 실종 우려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치가 지나치게 예능화되거나 이미지 중심 경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목받는 환경에서는 정책이나 공약보다 후보 개인의 이미지만 부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밈이나 유행을 무리하게 차용할 경우 진정성이 떨어지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한 청년 후보의 SNS 계정에는 소속 정당을 강조하며 춤을 추는 영상이 다수 업로드됐지만 정작 정책이나 공약 관련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후보의 계정에는 단순히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데 그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 재미와 화제성에만 집중하느라 정치의 본질인 정책 검증이 실종된 셈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모씨는 “SNS에서 후보 관련 영상을 자주 접하는데 춤을 추거나 유행하는 밈을 따라 하는 모습은 기억에 남아도 정작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재미있게 보는 것과 실제 투표에 참고할 정보를 얻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선거송의 진화는 유권자와의 접점을 넓혔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정치 메시지의 본질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과제도 함께 던진다. 선거의 본질은 유권자가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고 선택하는 데 있기 때문에 흥겨운 SNS 유세 이면에 숨겨진 후보자의 철학과 공약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