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전환은 과거 산업혁명에 비견될 수 있는 기반 기술 혁명이고, 해당 시장을 손에 쥔 업체의 기업 가치는 크게 상승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AI 관련 투자는 쉽게 꺾이기 어렵습니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AI리서치센터장은 1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 전망에 대해 이같이 운을 뗐다.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분기 순이익 1조원 시대를 연 미래에셋증권의 중심에는 사내 싱크탱크인 AI리서치센터가 있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이날 20년 애널리스트 경력의 박 센터장을 만나 국내 주식시장과 AI 시대의 리서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AI 에이전트로 진화…국내 반도체 산업 긍정적
통상 새로운 혁명은 침투율이 20~30%대로 상승할 때까지 높은 성장세가 유지되는데, 아직 지식노동에서 AI 침투율은 낮은 편이다. 특히 AI 기술이 실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메모리 사용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이같이 밝히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한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국내 반도체 산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국내 증시는 글로벌 대비 높은 실적 증가율과 함께 가계 자금의 머니무브 본격화로 하반기에도 긍정적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코스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12% 증가한 901조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코스피가 8000선을 넘어선 가운데 AI 투자가 불러온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가파른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반도체 대형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합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0.7%와 61.9%로 집계됐다. 반도체 영업이익 비중은 2분기 67%, 하반기엔 71%를 넘어설 걸로 점쳐진다.
반도체 독주와 K자형 양극화에 대한 일각의 우려가 없진 않지만, AI 수요 급증으로 반도체 사이클이 길어졌고 이익 규모 자체도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게 미래에셋증권의 판단이다. 반도체 쏠림에 대한 우려를 이익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박 센터장은 “실적 개선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중심의 주가 상승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반도체 업체 대비 한국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AI 데이터센터 증설로 고부가 정보기술(IT) 부품, 전력 기기 등 반도체 이외 업종으로 수혜가 확산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수급은 결국 펀더멘털 따라가…핵심 업종∙종목에 집중해야
올해 들어 중동 전쟁이란 뜻밖의 암초를 만나긴 했지만, 코스피는 전 세계 주요국 주가지수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국내외 금융투자업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해 코스피 목표치 상단을 1만포인트 이상으로 올려잡고 있다.
박 센터장은 중동 사태 이후 시장 전망에 대한 물음에 “결국 중동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AI 투자가 매우 강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좋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향후에도 반도체 중심으로 긍정적 흐름이 이어질 걸로 내다봤다.
수급도 결국 펀더멘털을 따라간다. 그는 “한국 반도체 업종은 AI 혁명의 핵심 수혜 대상임에도 과거 이익 변동성이 높아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글로벌 동종업체 대비 저평가돼 있다”며 “향후 중장기 이익 가시성이 개선되면서 밸류에이션이 회복될 수 있고, 이는 코스피 지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최근 코스피가 단기간 급등하면서 변동성이 확대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 센터장은 “단기적인 주가 급등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시장 전체보다는 핵심 업종과 경쟁력 있는 기업 중심의 접근 방식을 투자자들에게 추천했다. 단기적 시장 변동성을 맞추는 건 매우 어렵고 자칫 큰 그림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 기반 기술 혁명의 결과, 핵심 수혜 업체들의 기업 가치가 크게 증가한 점, AI 혁명에선 반도체가 핵심이란 점 등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전략을 조언했다. 아울러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종목과 시간을 분산해 변동성에 대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박 센터장이 최근 눈여겨보는 해외시장과 업종은 무엇일까.
그는 “미국은 이미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은 기업 경쟁력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AI 모델은 기술력에서 미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데 이러한 가성비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피지컬 AI 영역에서도 중국이 가진 양산 경쟁력과 현실 세계 데이터가 중요하다. 반도체 영역에서도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중국 테크∙반도체 업종에 대한 관심을 제언하기도 했다.
주가는 기업 가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중장기 우상향하는 증시를 위해선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한국 기업이 늘어나야 한다. 중국에서도 최근 실력 있는 강소기업이 많이 상장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AI 인력을 키워왔고 미국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벤처캐피털 생태계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박 센터장은 이같이 밝히면서 “한국 역시 인재 육성과 함께 자본시장 및 규제 선진화 등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서치 경쟁력 강화…AI 전환이 핵심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박 센터장은 2005년 미래에셋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간 정보기술(IT)∙화학∙배터리∙자동차∙글로벌 AI 등을 담당, 현장을 누비며 생생하고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투자자들에게 전달했다. 2024년 2월부터 2년간 성장기업분석팀장을 거친 그는 올해 3월부터 AI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다.
특히 AI를 리서치에 활용하는데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았다. AI 기술이 리서치를 포함한 지식 노동을 크게 바꾸기 시작한 만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AI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센터 내 구성원부터 고객사, 주요 금융 서비스업체에 이르기까지 AI를 적극 도입한 사례를 공유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박 센터장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혁신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을 누구보다 많이 봐왔다. 자명해 보이지만 의외로 적지 않은 기업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는 기존의 헤게모니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박 센터장은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같은 AI 도구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다르다”면서 “애널리스트가 가진 전문성과 판단 능력, 인사이트가 AI를 활용하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미 변화가 시작된 이상, 이에 얼마나 전략적으로 대응하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기본적 방향은 단순 업무를 자동화해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AI를 통해 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차별화된 리서치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박 센터장은 “AI 시대에는 콘텐츠가 범람할 수 있어 오히려 믿을 수 있는 리서치, 좋은 투자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확신했다.
AI 도입으로 업무를 효율화하면 애널리스트는 더 많은 리서치 자료를 낼 수 있다. 특히 코스닥 리포트는 자본의 효율적 배분 측면에서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미래에셋증권의 코스닥 리포트 발간량은 목표치를 큰 폭으로 웃돌고 있으며, 앞으로 더 증가할 걸로 예상된다.
◆AI 시대…차별화된 판단력과 인사이트 중요성 더 커져
박 센터장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애널리스트 역량을 묻는 말에 “애널리스트는 산업과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다양한 요인 중에서 핵심적 부분을 찾아내 결론을 낼 수 있다”며 “이러한 판단력과 인사이트가 AI 시대에는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산업 변화, 기업의 전략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다양한 생각, 경험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차별화된 통찰력을 갖기 위해선 다양한 업종을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서로의 의견을 듣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이 강점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비상장사부터 대체투자까지 폭넓은 영역에 투자하고 있는 점도 리서치의 차별성을 키우는데 큰 힘이 돼주고 있다. 박 센터장도 최근 그룹 네트워크를 활용한 중국 비상장 테크기업 탐방을 통해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언론에서 업계 최연소이자 미래에셋증권의 첫 여성 리서치센터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박 센터장에게 추구하는 리더십을 묻자, ‘함께 가는’ 리더십을 언급했다. 아무리 좋은 방향이라도 구성원들의 이해와 공감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리서치 팀장들이 팀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시간도 이러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금융권 여성 후배들을 향한 격려와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일에 몰두하면 또 다른 성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본인 스스로가 업무에 의미를 느끼고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응원했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