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으면 키 큰다”는 말이 성장기 아이에게 늘 맞는 조언은 아니다. 과도한 영양 섭취로 체지방이 지나치게 쌓이면 성호르몬 분비가 앞당겨지고,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최근 10년 새 소아청소년 비만율이 뚜렷하게 증가하면서 성조숙증, 지방간질환, 대사증후군 등 성장기 건강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2~2024년 기준 6~11세 소아비만 유병률은 13.6%로 집계됐다. 2013~2015년 8.7%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새 4.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12~18세 청소년 비만 유병률도 같은 기간 11.5%에서 15.1%로 높아졌다.
대한비만학회 ‘비만 팩트시트’에서도 국내 소아청소년 5명 중 1명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일부 아이의 체중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선영·우현아 교수에게 소아비만과 성조숙증의 연관성, 관리법에 대해 들었다.
-소아비만은 어떻게 진단하나.
김선영 교수는 “소아비만은 체질량지수, 즉 BMI가 성별·연령별 성장 곡선에서 95백분위수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다만 소아·청소년은 성장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단순히 체중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비만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체중은 지방량과 제지방량, 즉 지방을 제외한 근육·수분·단백질 등의 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체질량지수와 함께 체성분 분석을 통해 지방량, 근육량, 수분량 등을 함께 살피는 게 정확한 평가에 도움이 된다.”
-소아비만을 질환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선영 교수 “소아비만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신체활동 감소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시기의 비만이 단순한 체중 증가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대사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성인기까지 고착될 가능성도 크다.
소아비만은 단순한 체중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장 단계에 맞춘 신체 평가와 전문적인 영양 교육이 필요하다.”
-소아비만이 지방간질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나.
김선영 교수 “그렇다. 소아비만의 약 45~50%가 대사이상지방간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지방간질환이 심해지면 어린 나이에도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 섬유화가 나타날 수 있다.
성장기에 발생한 간 손상은 향후 간경변이나 간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지방간질환은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하는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어 조기 관리가 중요하다.”
-‘많이 먹으면 키가 큰다’는 인식은 왜 위험한가.
김선영 교수 “성장기 아이에게 충분한 영양 섭취는 중요하다. 그러나 ‘많이 먹는 것’과 ‘잘 먹는 것’은 다르다. 무조건 많이 먹이는 방식은 과도한 열량 섭취로 이어지고, 체지방 증가를 부를 수 있다.
많이 먹으면 키가 큰다는 잘못된 인식이 과도한 섭취를 유도해 소아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해 성조숙증 등 성장 저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아비만과 성조숙증은 어떤 관련이 있나.
우현아 교수 “소아비만은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켜 성조숙증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과도하게 축적된 체지방에서는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렙틴은 에너지 상태를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체지방이 많아지면 성호르몬 분비를 자극해 2차 성징을 앞당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만 아동은 또래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성장이 빠르다는 것이 반드시 최종 키에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조숙증이 최종 키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현아 교수 “성조숙증이 있으면 한동안 키가 빨리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성장판이 닫히는 속도도 함께 빨라진다는 점이다. 성장판이 일찍 닫히면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최종 키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기대치보다 작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성조숙증은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의심해야 하나.
우현아 교수 “일반적으로 여아는 만 8세 이전,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성조숙증을 의심할 수 있다. 또래보다 발육 속도가 눈에 띄게 빠르거나, 여아에서 가슴이 나와 보이거나, 겨드랑이 털·음모 등 체모가 관찰되는 경우도 확인이 필요하다.
성조숙증은 신체 변화뿐 아니라 정서적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또래보다 빠른 신체 변화는 아이에게 불안감이나 위축감을 줄 수 있고, 학교생활 적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조숙증이 의심되면 어떤 검사를 받나.
우현아 교수 “성조숙증이 의심될 경우 성장판 나이 검사와 호르몬 혈액검사 등을 시행한다. 성장판 나이 검사는 실제 나이보다 뼈 나이가 얼마나 앞서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호르몬 검사를 통해 사춘기 진행과 관련된 호르몬 분비 상태도 평가한다.
치료가 필요한 중추성 성조숙증은 성선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 유도체 약제를 활용한다. 치료 시작 후 약 2~6개월이 지나면 2차 성징 진행이 억제되고 성장 속도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학생건강검진에서 비만으로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현아 교수 “학생건강검진은 3년마다 시행된다. 이때 자녀가 비만 구간에 해당한다면 다른 수치가 정상으로 보이더라도 성장 단계에 맞춘 종합적인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특히 체중, 체질량지수, 체성분, 혈압, 혈당, 간 수치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아이마다 성장 속도와 체형, 생활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살을 빼라’는 방식보다 전문적인 영양 교육과 운동 계획을 세우는 접근이 필요하다.”
TIP. 소아비만과 성조숙증을 예방하려면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신체활동이 기본이다. 고열량·고당류 식품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채소·통곡물 등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해야 한다.
운동은 억지로 시키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 줄넘기, 구기 종목 등 일상에서 신체활동을 늘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성장기 관리는 많이 먹이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몸 상태에 맞게 먹고 움직이는 습관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