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월 발간한 ‘글로벌리스크 보고서’는 인공지능(AI)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면서 생산성은 오르지만 고용은 늘지 않는 현상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 “AI가 향후 5년 내에 초급 사무직 일자리의 최대 50%를 없애고, 실업률을 10~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상보다 빠른 시일 내 AI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의 확산이 반드시 일자리를 위협하는 건 아니다. 생성형 AI 활용도가 높으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기업 PwC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2025년 글로벌 인력 전망 및 우려 조사’ 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생성형 AI를 매일 사용하는 근로자들은 생산성이 향상됐고, 고용 안정성과 임금 수준도 높아졌다고 답했다.
AX 흐름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조직 내 업무 속도와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생성형 AI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자체적으로 직무별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식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달 중 모든 관계사에 제미나이, 챗GPT,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를 공식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소프트웨어, 마케팅 분야의 업무 생산성 제고는 물론, 개발, 제조 등 전 업무 영역에 대대적으로 AI를 적용해 이를 통한 업무혁신에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은 글로벌 빅테크가 제공하는 최신 생성형 AI를 임직원 업무에 결합해 의사결정 속도와 업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제품 기획·개발·마케팅 등 전 영역에서 글로벌 시장 변화에 더욱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4~5월 중 직원 2500명을 대상으로 제미나이, 챗GPT,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 후보군에 대한 현장 검증(PoC)을 진행하며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 도입을 타진해왔다.
LG그룹도 외부 생성형 AI 활용에 나선다. LG CNS는 지난 9일 앤트로픽과 클로드 엔터프라이즈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이번 계약은 LG그룹 전 계열사에 적용 가능한 통합 계약 형태로, LG CNS는 전사 임직원이 사용할 수 있도록 클로드를 오픈해 개발 등 다양한 업무에서 AI 기반의 생산성 혁신을 본격 추진한다는 목표다. 향후 LG그룹사와 외부 기업을 대상으로 클로드의 도입부터 활용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며 AX 사업을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SK텔레콤은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 방식을 AI에 직접 학습시켜 활용하는 AI 에이전트 서비스 ‘에이닷 비즈 코워크' 베타 버전을 사내에 적용했다. 에이닷 비즈 코워크는 복잡한 업무 요청도 스스로 실행 계획을 세우고 코드 작성과 결과 검증까지 수행한다. 개발 지식 없이도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며, 한 번 학습한 업무 방식은 반복 수행해 업무 효율을 높인다. 기존 AI 도구가 질문에 답하는 수준이었다면, 코워크는 구성원 각자의 업무 루틴 자체를 자동화한다.
한 예로 법무 담당자가 계약 기간, 위약금, 개인정보 처리 조항 등 계약서 검토 기준을 한 번 학습시켜두면, 이후 새 계약서가 들어올 때마다 AI가 동일한 기준으로 검토 결과를 정리해 준다. 윤현상 SK텔레콤 에이닷기획담당은 “AI 활용은 이제 질문에 답을 받는 단계를 넘어, 내 업무 방식을 AI에 가르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며 “구성원이 자신의 직무에 맞춰 다수의 AI 에이전트를 직접 구현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가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주요 IT서비스 기업들은 산업계의 AX 전환을 돕는 특급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삼성SDS·LG CNS는 오픈 AI의 챗GPT 엔터프라이즈 리셀러로서, 금융, 제조, 공공, 국방 등 주요 산업 전반에서 기업 고객의 AX 성과 창출을 지원하겠다는 각오다.
업무상 A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AI에 어느 수준까지 권한을 부여해야 할지에서부터 할루시네이션, 보안 위협 등 관리해야 할 위험 요소가 한둘이 아니라서다.
딜로이트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중앙에서 제어하지 않으면 AI 에이전트는 눈에 띄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작동할 수 있다”면서 “이에 더해 민감한 정보를 유출하거나, 고객에게 불쾌감을 주고 사이버 공격을 유발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딜로이트가 24개국에서 정보 기술 및 비즈니스 리더 32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에이전트형 AI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성숙한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한 기업은 단 21%만에 그쳤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