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문한 서울 은평구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중장년취업사관학교. 강의실 안은 이른 아침부터 새로운 도전에 나선 20여 명의 수강생이 뿜어내는 활기와 열정으로 가득했다. 주로 50대와 60대로 구성된 이들의 눈빛에는 모니터 화면을 향한 호기심과 설렘이 가득 배어 있었다.
이들이 강의실을 찾은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수십 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퇴임하고 인생 2막의 창업 전선에 뛰어든 퇴직자부터, 급변하는 고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배우려는 이들까지 목적은 다양했다. 하지만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겠다는 열정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실제로 내년 공공기관 퇴임을 앞둔 50대 박성한씨의 손끝은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분주했다. 그에게 지금 배우는 AI는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은퇴 후 삶을 지탱할 실전 생존 무기다.
강의실 한편에서 박씨는 코끝으로 흘러내리는 돋보기안경을 고쳐 잡으며 신중하게 자판을 두드려 내려갔다. 서툰 손짓 끝에 명령어를 완성하고 엔터 키를 누르자, 화면 위 커서가 깜빡인 지 불과 3초 만에 정교한 문장들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며 막힘없이 쏟아져 나왔다. 눈 깜짝할 새 완성된 결과물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활기찬 미소가 피어올랐다.
박씨는 “은퇴 후 창업을 할 예정인데 블로그 마케팅이나 콘텐츠 기획 역량을 밑바닥부터 확실히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평소 회사에서 AI를 가끔 접할 기회는 있었으나, 막상 실전 비즈니스 영역에서 직접 명령어를 입력하려니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멋쩍은 웃음을 내비쳤다.
박씨처럼 인생 2막을 준비하겠다는 뜻은 같았으나,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 조작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도 있었다. 전직 공무원 출신인 70대 김재도씨는 모니터를 가늘게 응시하며 연신 자판 위로 손가락을 굴리며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김씨는 “AI를 아예 처음 접해본 데다 컴퓨터마저 서툴러 진도를 따라가기가 숨 가쁘다”면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씨는 “그래도 내가 입력한 몇 줄에 AI가 정성스러운 글을 뚝딱 만들어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며 “벌써 며느리에게 캡처화면을 보내 자랑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학가도 변화시키는 AI 열풍…학제 개편 가속화
은퇴 후 생존을 위해 돋보기를 붙잡은 중장년의 사투는 시작에 불과하다. 세대를 불문하고 거세게 불어닥친 AI 열풍은 이제 청년들의 미래가 걸린 상아탑의 지형마저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현재 주요 대학들은 이미 AI 중심으로의 체제 정비를 마쳤거나 추진 중이다. 최근 신설된 고려대 인공지능학과, 서강대 AI기반자유전공학부, 이화여대 인공지능데이터사이언스학부는 지난해 첫 신입생을 받았다. 올해는 동국대가 기존 학부를 컴퓨터·AI학부로 재편했고, 숭실대는 두 개 학부를 통합해 AI소프트웨어학부로 개편했다. 여기에 서울대학교가 2027학년도부터 ‘융합 AI 광역’ 학부 신설을 본격 추진하면서, 대학가의 AI 중심 체질 개선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입시 수요도 뜨겁다. 2026학년도 정시 일반전형에서 고려대, 서강대 등 전국 20개 대학의 AI 관련 학과 지원자는 총 4896명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하며 최근 3년 새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3069명에 불과했던 2024학년도와 비교하면 그 성장세는 한층 더 가파르다.
수시모집 경쟁 역시 치열하다. 2024년 ‘Language & AI융합학부’를 신설한 한국외대의 경우, 올해 수시 논술 전형 경쟁률이 183.71 대 1까지 치솟으며 학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부 시절 원자력공학을 전공했던 김용호씨는 최근 고려대학교 인공지능대학원으로 진학하며 캠퍼스에 몰아치는 지각변동을 몸소 겪고 있다. 김씨는 “인공지능이 산업 전반의 핵심 축으로 급부상하면서 학과를 불문하고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매년 늘고 있다”며 “체감상 입학 경쟁률이 해마다 눈에 띄게 치열해지는 것은 물론, 동료들의 학술적 배경도 이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고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전했다.
그가 과거 국가 전략 산업의 중심이자 촉망받던 전공이었던 원자력공학을 뒤로하고 AI라는 새로운 트랙을 선택한 배경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확실한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씨는 “장학금 제도는 물론이고, 국내외 기업들과 긴밀하게 연계된 산학협력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 전공 전환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