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반도체 굴기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첨단산업 제재를 뚫고 주요 반도체 영역에서 중국이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및 지방정부의 천문학적인 투자, 자국 빅테크에 탄탄한 내수 수요 등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CXMT, D램 점유율 8%까지…낸드에선 YMTC 껑충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최대 D램 제조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약진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CXMT의 올해 1분기 D램 시장 점유율은 8%로 집계됐다. 아직 메모리 ‘빅3’와는 격차가 크지만 1년 새 5%포인트나 점유율이 뛴 점은 주목할 만하다. CXMT는 지난달 27일 IPO를 통해 최대 666억 위안(한화 약 14조1200억원)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조달 자금은 D램 생산라인 업그레이드와 공정 고도화, DDR5·LPDDR6·HBM 등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 및 선행 연구개발 투자에 쓰일 예정이다. 이날 기준 CXMT의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는 24위인데 텐센트(25위), 인텔(26위)보다도 순위가 높다.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기업인 양쯔메모리(YMTC)의 성장도 매섭다. 올해 1분기 기준 글로벌 낸드 시장에서 YMTC의 시장점유율은 13%로 1년 전(8%) 대비 5%포인트 상승했다. 이 회사는 대규모 팹 증설을 통해 내년까지 캐파(생산능력)를 두 배 이상 확장하는 공세적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의 선도기업들이 고마진 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및 최선단 공정으로 자원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범용 D램 및 낸드 시장의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YMTC 역시 CXMT처럼 대규모 자본조달을 위해 IPO 절차에 돌입했다.
◆자체 기술로 DUV 개발까지?…글로벌 선두 기업 위협은 아직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전방위적이다. 이밖에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서서히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중신궈지(SMIC)의 점유율은 5.1%로, 2위인 삼성 파운드리(6.5%)와의 격차는 불과 1.4%포인트에 불과하다. 이미 설계 분야에선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국에 경쟁 우위인 상태다.
중국이 수출 통제를 뚫고 반도체 자립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중국 국영기업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수출 통제로 ASML이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막았지만, 자체 기술로 DUV 양산에 나선 중국을 막지 못한 것이다. 아직 중국산 노광장비의 완성도가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반도체 자립에 나선 점은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중국이 자체 DUV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달 27일, ASML의 주가는 8%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중국 반도체의 대약진은 정부의 천문학적 투자가 배경이 됐다. 중국은 2014년부터 5년 주기로 세 차례에 걸쳐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빅펀드)를 조성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4년 1기 당시 987억 위안이던 빅펀드 규모는 2기 때 2041억 위안으로 갑절가량 늘었고, 2024년 3기 들어선 3440억 위원으로 또다시 급증했다. 15년 새 한화 기준으로 총 137조원이 넘는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 “中, 글로벌 선두와는 아직 격차”…“韓, 캐파 증설로 추격 뿌리쳐야”
다만 중국의 현 반도체 산업 발전 단계가 글로벌 상위 업체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BC는 CXMT를 예로 들며 “현재 많은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에 메모리 칩을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 PC 및 서버 시장에서 점차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면서도 “고용량 서버 제품 및 AI 서버용 고급 메모리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역량이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급부상에 대응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장기적으로 꾸준한 기술 개발과 캐파 증설을 통해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특히 한국은 중국 대비 캐파가 상당히 약했는데,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캐파를 빠르게 늘리기로 한 점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 “예전 속도로 캐파를 늘려서는 중국의 막대한 자본력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품 폴리폴리오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연구실 전문연구위원은 “한국과 중국 간 반도체 산업 격차는 약 2∼3년, HBM은 그보다 더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반도체 시장은 첨단 제품과 범용 제품으로 양분화할 텐데, 이 시장에서 한국이 어느 포지션을 잡아야할지 잘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수출규제로 반도체 제조 장비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중국의 생산기술력이 과거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는 의미”라면서 “한국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줬다는 교훈을 반도체 산업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