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금융 공공기관 내부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르면 다음달 이전 로드맵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전 후보로 거론되는 기관들의 노조는 공동 집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반대 여론전에 나섰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들은 금융 공공기관 유치를 지역 성장 전략과 연계하며 경쟁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지부는 이날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인근 의사당대로에서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산은만 옮겨도 10년간 7조 손실”…정책금융 여력 감소 우려
노조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정책금융기관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논리로 일괄 분산할 경우 금융산업의 직접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각각 산업구조 조정과 첨단산업 지원, 중소기업 금융, 수출·해외투자 금융 등 역할을 담당한다. 금융회사와 주요 기업, 정부·유관기관 상당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본점을 지방으로 옮기면 의사결정 속도와 고객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주요 고객인 대기업과 금융회사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고객 접근성이 악화되고 신속한 의사결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재익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업은행지부 부위원장은 “금융시장의 중심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경쟁력 저하와 인력 이탈이 심화될 수 있다”며 “산업은행의 수익 감소는 정부에 대한 배당 감소뿐 아니라 전국에 공급할 수 있는 정책금융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산업은행 노조가 과거 한국재무학회에 의뢰한 연구에서는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수익 감소와 이전 비용 등을 합쳐 향후 10년간 산은 자체적으로 약 7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국가경제 전체의 손실 규모는 약 15조5000억원으로 제시됐다.
고객 이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부위원장은 “과거 이전 논란 당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산업은행 본점이 이전할 경우 주거래 대출은행을 변경하겠다는 응답이 상당수 있었다”며 “정책금융기관이지만 수익사업에서는 시중은행과 금리 등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력 유출 역시 부담이다. 금융업은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국제금융 등 전문인력의 역량이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이전 과정에서 숙련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면 장기간 축적한 전문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3사 노조는 향후 정부가 국책은행 이전을 구체화할 경우 파업을 포함한 추가 대응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정부는 ‘묶음 이전’ 검토…금융 공공기관 후보군 확대
최근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을 추가로 비수도권에 배치하는 방안은 수년 전부터 검토됐지만 대상 기관과 이전 지역을 놓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구체적인 실행은 미뤄져 왔다. 하지만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각 지역 후보들이 공공기관 유치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데 이어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 이전 추진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정부가 과거처럼 기관을 개별적으로 흩어놓기보다는 지역별 산업 특성에 맞는 기관을 묶어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금융 공공기관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권에서는 국책은행 3사를 비롯해 예금보험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이 잠재적인 이전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미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규정한 산업은행법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실제 이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까지 이전 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의 경계감은 한층 커진 상황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