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더 빨리, 저렴하게 만날 수 있는 얼리버드 티켓이 온라인 상에서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다. 방학 숙제를 위해 의무적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에 맞춰 백화점이 예술적 영감을 주는 새로운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다. 유명 맛집이나 팝업스토어 행사로 발길을 끌어 모으는 것을 넘어, 문화예술 전시로 오프라인 쇼핑 경험을 한 차원 높이겠다는 취지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난해 관람객 수는 약 203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문화소비 욕구가 급증한 가운데 SNS 인증샷과 굿즈 구매 등 MZ세대의 수요와 맞아 떨어진 것이 미술관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백화점의 경우 럭셔리와 프리미엄의 가치를 전달함으로써 이미지 제고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활동을 오랜 기간 이어왔다. 명품과 예술을 향유하는 소비층이 겹치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최근 들어선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더콘란샵은 최근 디자인과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더콘란샵 공간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롯데타운 명동을 하나의 대형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소비자들이 일상속에서 세계적인 디자인과 예술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내달 2일까지 본점 외관이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다이도 모리야마’의 스트리트 사진으로 채워진다. 전시장 안에서 감상하던 사진을 건물 밖으로 끌어내, 실제 도시의 거리와 어우러지는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본점 1층 팝업 애비뉴에서는 내달 18일까지 약 100평 규모의 팝업을 열고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오리지널 작품과 대형 전시 설치를 함께 선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 4일부터 17일까지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의 컬러와 패턴을 선보였다.
현대백화점은 아트테인먼트(아트+엔터테인먼트) 전략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그 일환으로 더현대 서울은 갤러리아이엠과 함께 내달 4일까지 한국 전통 작품 전시 ‘K-아트 서울’을 진행한다. 도자기·보자기·한지 등 한국의 전통 소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예·회화·가구 등 작품 총 50여점을 선보인다. 대표 작품으로는 국가무형유산 칠장 보유자 정수화 명장의 ‘나전 백무늬 삼단함’, 함도하 작가의 ‘내츄럴 머릿장’, 윤상현 작가의 ‘달항아리’ 등이 있다.
현대면세점은 무역센터점에서 내달 12일까지 몰입형 전시 ‘에코싱크: 다시, 가까이’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후원하는 ‘2026 예술분야 창업도약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현대면세점과 바이오필릭 디자인 스튜디오 수무가 협업했다. 전시 공간에 설치된 미디어월에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식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기간 동안 향주머니(사쉐)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과 웰컴 기프트를 한정 수량 증정한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여한다. 첫 파트너십을 기념해 지난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신세계그룹의 공간·콘텐츠 기획 역량을 집약한 ‘신세계 라운지’를 조성해 선보였다. 신세계 라운지에서는 특별 전시를 통해 프랑스 작가 폴 콕스의 ‘Diary’ 연작 336점을 한자리에 모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신세계그룹은 단순 상품 판매를 넘어 소비자가 오프라인 공간에 머무는 시간과 경험을 점유하는 것을 리테일 공간 혁신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1963년 문을 연 국내 유통업계 최초의 미술 전문 공간 ‘신세계갤러리’가 대표적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는 남산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들의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조각공원 ‘트리니티 가든’이 마련됐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