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금리는 ‘겨울’이 아니라 ‘기후’다

염승환 LS증권 이사
염승환 LS증권 이사

 

금리가 오르면 주식과 집값은 떨어진다. 우리가 수십 년간 교과서처럼 믿어온 공식이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이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3.75~4.00%로 0.25%포인트 올렸다. 3년 2개월 만의 인상이고,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 분포)는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을 가리킨다. 한국은행도 7월과 8월 연달아 금리를 올려 기준금리가 3.00%가 됐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25일 5.17%까지 올라왔다. 그런데도 자산시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일까?

 

답은 돈이 흐르는 방향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지금은 ‘소비의 시대’가 아니라 ‘투자의 시대’다. 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설비투자에 쓰겠다고 밝힌 금액은 합쳐서 7200억~7450억 달러에 이른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는 이 돈은 금리가 조금 오른다고 멈추지 않는다. 뒤처지는 순간 시장을 통째로 잃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투자가 경제를 떠받치니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고, 물가가 버티니 금리도 내려오지 않는다. 연준은 올해 물가 전망을 3.7%로 올렸고, 목표치 2% 도달 시점을 2029년 전후로 늦췄다. 우리는 고금리를 잠시 지나가는 겨울이 아니라 한동안 함께 살아야 할 ‘기후’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금리라고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9월 셋째 주까지 85주 연속 올랐다. 역대 최장 기록과 같은 기간이고, 누적 상승률은 17.5%로 과거 최장 상승기(7.7%)의 두 배를 넘는다. 공급이 부족한 곳에서는 금리보다 희소성이 가격을 정한다. 이익이 늘어나는 곳도 마찬가지다. 9월 1~20일 반도체 수출은 341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59.4% 늘었다.

 

다만 고금리는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경쟁력이 약한 곳부터 골라서 때린다. 결과는 ‘양극화’다. 나이키 주가는 35달러까지 밀려 2014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명품 요가복’으로 불리던 룰루레몬은 2분기 매출이 4% 줄고 핵심 제품인 레깅스 판매가 20% 급감하자 주가가 하루 만에 18% 폭락했다. 올해 들어서만 반토막이다. 이자 부담에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는 이름값이 아니라 가치에 돈을 낸다.

 

반대편에는 한국 화장품이 있다. 메디큐브를 보유한 에이피알은 2분기 매출 7675억원, 영업이익 1906억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134% 늘며 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올 상반기 화장품 수출도 70억달러로 27.3% 늘어 역대 최대다. 고금리 시대에 운명을 가르는 것은 업종이 아니라 경쟁력이다.

 

더 역설적인 곳은 AI 인프라다.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가 불리하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수록 반도체·전력기기·전선 기업의 주문서는 두꺼워진다. 다행히 우리 증시에는 이런 기업이 유독 많다. 메모리 반도체부터 변압기, 초고압 전선까지 AI 인프라 공급망 곳곳에 한국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금리 상승이 아니라 ‘금리 급락’이다. 경기가 멀쩡한데 금리가 며칠 만에 곤두박질치는 일은 없다. 그것은 어딘가 깨졌다는 신호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 미국 단기 국채금리가 며칠 새 급락했던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 함께 볼 지표는 투기등급 회사채와 국채의 금리 차이다. 이 숫자가 가파르게 치솟는다면 약한 고리부터 돈줄이 막히는 신용경색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금리의 ‘높이’보다 ‘속도’와 신용의 ‘균열’을 보는 것, 그것이 고금리 시대의 계기판을 읽는 법이다.

 

기후는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옷차림뿐이다. 새 기후에서 살아남는 것은 금리가 내리기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자산으로 먼저 옷을 갈아입은 사람이다.

 

염승환 LS증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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