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도와줘, 한턱쏜다”… 전쟁 핑계 16조원 담합? 관련자 재판행

-공급가 변동폭·시기 짬짜미… 타사 임원끼리 유대관계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석유화학제품 담합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석유화학제품 담합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중동에서 발발한 미국-이란 전쟁을 빌미로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는 국내 업체 6곳과 소속 경영진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16조원대의 담합 규모는 검찰이 수사한 사건들 가운데 역대 최대 수준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1일 LG화학, 애경케미칼, OCI, 롯데정밀화학, PKC, 유니드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김유신 OCI 부회장 대표이사와 장영수 전 PKC 대표이사를 포함해 담합에 가담한 6개 업체와 전·현직 대표이사 및 임직원 37명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업체별 기소 인원을 보면 LG화학 12명, PKC 6명, OCI 11명, 애경케미칼 4명, 롯데정밀화학 3명, 유니드 1명이다. 이중 PKC 영업본부장을 지낸 배모 씨, LG화학 사업부장을 지낸 황모 씨는 구속 상태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폴리염화비닐(PVC), 가소제, 가성소다, 염산 등 8개 품목에 대해 담합을 실행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의 담합 규모를 16조3961억원으로 특정했다. 이는 앞서 공정거래조사부가 수사한 전분당 담합(약 10조1520억원), 설탕 담합(3조2715억원), 밀가루 담합(5조9913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이들은 공급가격의 변동 폭과 그 시기를 합의하거나 거래처 입찰 가격을 합의하는 등 방식으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대형거래처에 대해서는 각 사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함께 결정한 가격 수준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전에 낙찰업체 및 입찰 가격을 협의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담합 모의는 주로 팀장급 모임에서 이뤄져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가격 인상 요인이 없는데도 가격을 올리자고 협의하거나 내부 가격 조율 과정에서 타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임원들은 “PVC는 형하고 나하고 마음먹었으니까 그렇게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거야”, “형 사랑해요”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담합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격인상 공문을 실행할 순서까지 미리 정했으며,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후임자가 새로 부임할 경우 이를 타사에 소개해 담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으며, 일부 업체는 경쟁업체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전담하는 직원을 별도로 지정하는 조직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아울러 검찰은 이들이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물가 상승 등 국가적 위기를 맞았는데도 이를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미·이란 전쟁 직후 석유제품 국제가격이 급등하자 정부가 석유화학제품 생산 안정을 위해 1465억원 상당을 지원했는데도 담합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모 업체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받게 되자 “트럼프가 도와줬다”, “한턱내겠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적 위기로 물가 안정을 위한 지원금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부 업체는 오히려 경제 위기를 손익 개선의 기회로 활용하며 가격담합을 지속해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8월 7개 업체 사무실 등지를 압수 수색을 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고, 지난달에는 김 대표이사와 장 전 대표이사 등 핵심 피의자를 소환조사했고 공정위에 두 차례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김 전 대표이사와 장 전 대표이사 등 6명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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