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닉스 인수전이 STX그룹과 SK텔레콤의 양강 구도로 흘러감에 따라 귀추가 주목된다.
STX와 SK텔레콤은 지난 8일 “출자전환주식 공동관리협의회에 (주)하이닉스반도체 주식의 입찰 절차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두 회사 모두 하이닉스 인수전에 대한 시너지 효과는 적지만 사업 다각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STX그룹은 의향서를 제출하자마자 해외 계열사의 지분 매각을 통해 2500억원의 현금을 마련했다. 시장에서는 STX가 이외에도 수시로 현금성 자산을 매각해 하이닉스 인수를 위한 실탄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하이닉스가 10년만에 새 주인을 맞는 것은 기정사실화 됐다. 하이닉스는 지난 1983년 현대전자로 출발했으며 1999년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한 후 2001년 옛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다.
◆ STX 그룹, 하이닉스 인수 위해 지분 매각나서
10일, STX그룹은 지난 8일 해외 조선계열사인 STX유럽(옛 아커야즈)이 자회사 STX OSV 지분 18.27%를 매각해 25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STX OSV는 싱가포르에 상장된 해양플랜트 작업지원선 등 특수선 전문 조선사로 이번 지분 매각에도 STX유럽의 STX OSV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된다. STX유럽은 STX OSV 지분 50.7%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STX그룹의 이번 지분 매각은 하이닉스 인수전에 대한 결의를 보여준 것으로 보고 있다.
STX그룹은 대금의 절반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중동의 한 국부펀드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 인수대금 중 약 1조2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에 이르는 STX그룹의 몫은 그룹내 우량 자산 및 현금성 자산을 처분해 조달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STX그룹의 경우 차입을 통한 잇딴 인수합병(M&A)로 덩치를 불렸지만, 조선 및 해운업황 부진에다 건설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부실의 유탄에서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STX건설의 지난 해 말 PF 관련 연대보증 제공금액은 저축은행 관련만 자본총계(1654억원)의 2.5배 규모인 4208억원에 달한다.
설사 인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조선, 해운, 건설 등 중후장대형 사업이 주력인 STX가 초정밀산업인 반도체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STX와 SKT, 승자는 누가 될까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것은 STX와 마찬가지로 사업다각화를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가 목적이다.
통신분야의 가입자 포화현상으로 7년째 매출 12조원 안팎에서 성장이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인수전은 SKT를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사실상 창업 2세대인 최태원 SK회장과 전문경영인 출신의 강덕수 STX 회장의 한판승부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인수전에 나선 두 그룹은 모두 새로운 사업 진출을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과 조선이 반도체와 어느정도의 시너지를 일으킬지는 의문이다.
어떠한 전략을 내세워 본입찰에 나설 것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STX는 이미 지분매각 등을 통한 실탄확보에 나섰지만 아직 SK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가 3조원 이상이 예상되는 덩어리가 큰 매물이라는 점과, SK와 STX가 반도체를 해본 사업분야가 아니라는 점이 확실히 부담이 되기에 두 그룹은 무리한 인수는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지난 8일 하이닉스는 전일대비 0.76% 오른 2만6600원으로 마감했다. 반면 SK텔레콤은 3.24% 내린 4만9500원으로 마감했고 STX그룹 관련 STX, 팬오션, 조선해양, 메탈, 엔진 등은 최대 2.4%에서 0.4%대 상승하며 마감했다.
증권가에서는 SK텔레콤의 이번 인수전에 대해 부담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오는 10월초 최종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라 아직 인수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인수가 확정될때까지 주가에 부담 요인이 될 것이며, 인수한다 해도 주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는 부정적이다”라고 운을 떼고 “ 정부규제가 많고 성장이 정체된 내수산업인 통신사업에서 벗어나 규제가 없고 성장성이 있는 수출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는 점은 긍정적이나 부정적인 측면이 더 커보인다”고 설명한다.
통신과 연관성이 적은 반도체사업에 투자해서 얻는 시너지 효과가 미미한데다, 반도체 산업은 경기변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익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하이닉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재무적인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게 양 연구원의 설명이다.
최윤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하이닉스 인수에 예상되는 소요 자금이 약 2조5000억원으로 예상되고 SK텔레콤이 2011년 1분기말 기준으로 현금 1조5000억원(단기금융상품포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1년 연간 FCF가 1조4000억원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SK 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에 따른 재무적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최 연구원 또한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입찰 참여는 주가에는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메모리 반도체사업과 SK텔레콤의 기존 모바일, 콘텐츠 사업의 시너지가 제한적으로 예상되며 IT 사업, 특히 반도체사업의 경험이 없어 비효율적인 경영에 대한 우려가 있으며, 고가 인수 리스크도 있다고 덧붙였다.
◆ 승자의 저주, 다시 한 번 재현될까
‘승자의 저주’가 재현될 것인가의 여부도 관심사다. 승자의 저주란 M&A 또는 법원 경매 등의 공개입찰 때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이를 위하여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칭한다.
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ARCO, Atlantic Richfield Company)에서 근무한 카펜(E.C. Carpen), 클랩(R.V. Clapp), 캠벨(W.M. Campbell) 등 세 명의 엔지니어가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가 1992년 발간한 <승자의 저주 The Winner’s Curse>라는 책을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번 인수전의 성패는 인수가격에 달려 있지만 두 그룹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인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또한 '승자의 저주'를 막기 위해 자금조달 능력도 검증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관기관인 외환은행 등 주식관리협의회는 국가 핵심 산업에 대한 M&A인 점을 감안해 매각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최대한 확보할 계획이다.
주식관리협의회는 공동매각자문사 5개사와 법률자문사, 회계자문사가 참여하여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2곳에 대한 입찰 참여 적격성 여부를 검증하고, 다음달 말 본입찰을 실시한 후 연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및 본계약 체결을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철 세계파이낸스 기자 ybsteel@segye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