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일부 마니아층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중고거래 시장이 유래 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거래 플랫폼의 발전,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부상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2010년 약 5조원에서 현재 약 20조원 규모로 4배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중고거래 이용자도 3년 전 200만명에서 지난해 6월 1090만명으로 급등했다.
현재 중고시장은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가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회원수로만 따지면 2003년 서비스를 개시한 ‘맏형’ 중고나라가 1859만명으로 가장 많고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도 1000만명의 이상의 회원을 보유 중이다.
국내에선 2000년대 중후반부터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다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와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국민의 가처분소득(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이 줄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고시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중고거래는 저성장이 악화하는 가운데, 나름의 수입 속에서 적게 쓰지만 큰 만족을 얻으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직관성과 편의성, 보안이 강화된 중고 거래 플랫폼의 등장도 시장 활성화를 이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초창기 중고 거래는 당사자 간 직접 거래가 대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판매자나 상품에 대한 불신이 컸고, 실제로도 물건 가격을 속이거나 엉뚱한 제품을 배송하는 등 사기 사례가 적잖아 중고거래 시장의 성장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거래 플랫폼이 앱으로 옮겨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플랫폼이 일종의 중간상 역할을 하면서 안전결제 시스템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등을 도입하자 중고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향상된 것이다.
중고 플랫폼의 성장은 ‘리셀(re-sell·되팔기)’ 재테크의 인기로 이어졌다. 리셀 재테크는 희소성이 높은 한정품이나 이벤트성 제품을 구매한 뒤 중고 시장에서 속칭 ‘프리미엄(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셀 재테크를 주도하는 것은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다. 아껴 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자본이 부족해도 원하는 제품을 꼭 구매하려고 하는 젊은층의 소비 취향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여대생 전모 씨(22·여)는 작년부터 중고 거래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전 씨는 “학창시절 좋아했던 아이돌 가수의 앨범과 한정판 ‘굿즈(기획상품)’들을 판매해 3배 이상의 차익을 본 뒤 옷, 신발, 생활용품 등으로 거래 품목을 늘리고 있다”며 “최근엔 SNS를 통해 ‘플렉스(재력을 과시하는 문화)’를 하고 싶지만 지갑은 얇은 대학생,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 중고 명품 거래도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선 중고 명품 거래 시장이 2012년 1조원에서 지난해 말 7조원으로 약 7배 성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유통기업들의 중고시장 진출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마트는 작년 8월 대형마트 최초로 매장 내 중고거래 자판기 ‘파라바라(parabara)’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판매자가 자판기에 팔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구매자는 실물을 확인한 뒤 비대면으로 구입할 수 있다. 롯데마트 측은 향후 자판기 설치 매장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케아코리아는 소비자가 사용하던 이케아 가구를 매입한 뒤 수선해 재판매하는 ‘바이백’ 서비를 시행하고 있다.
금융업계도 중고거래 맞춤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최근 포인트를 활용해 중고 거래 수수료 부담을 줄이는 ‘KB국민 중고거래 안심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KB국민카드와 제휴한 중고거래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자가 KB페이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하면 결제액만큼 포인트로 전환돼 에스크로 계정에 예치되고, 구매가 확정된 시점에 예치된 포인트가 판매자에게 현금으로 지급된다.
관련 업계는 중고거래 시장의 인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기 호전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이라 향후 중고 시장은 덩치를 더욱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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