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기간에는 일반적인 사법 절차가 작동하기 어렵다. 경기 일정은 촘촘하고, 골든 타임을 놓치면 선수는 4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올림픽 기간에만 운영되는 특별중재판정부(Ad-hoc division)를 두어 출전 자격, 도핑, 선수 등록, 경기 규정 해석 등 올림픽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분쟁들을 해결하고 있다.
절차의 핵심은 속도다. 사건이 접수되면 원칙적으로 24시간 이내에 결론이 내려진다. 이러한 판단은 전 세계 스포츠법 및 중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재인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들이 내린 결정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따라야 하는 최종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관할권과 ‘Field of Play’
올림픽 초기에 접수되는 사건의 대다수는 출전 자격을 둘러싼 분쟁이다. 그러나 특별중재재판부는 올림픽 기간 중이거나 개막식 10일 전 이후에 발생한 분쟁에 한해 관할권을 가진다. 따라서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의 경우 출전 자격을 부여하지 않은 결정이 2026년 1월 27일 이전에 이루어졌다면 특별중재재판부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 이는 특별중재재판부가 모든 불만을 해결하는 마지막 창구가 아니라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시간표에 맞춰 작동하는 절차임을 잘 보여준다.
관할권이라는 문턱을 넘더라도 선수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올림픽 헌장 제44조는 “올림픽 참가는 누구에게도 보장된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중재판정부는 각국 올림픽위원회 및 종목 협회의 선수 선발 재량을 폭넓게 존중한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컬링 종목의 안젤라 로메이(이탈리아)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선발 결정이 자의적이거나 부당했다는 점을 선수가 입증하지 않는 한 해당 결정을 뒤집기는 어렵다.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장 예민하게 대두되는 쟁점은 ‘Field of Play’ 원칙이다. ‘Field of Play‘, 즉 경기장 내 판정이란 심판이나 경기 운영진이 현장에서 경기 규칙을 적용하고 해석하여 내린 결정을 의미한다. 파울 여부와 같은 순수 스포츠적 판단부터 이의신청 기한과 같은 절차적인 부분까지 그 범위가 넓다. 이러한 경기장 내 판정은 편향적이거나 악의적으로 내려졌다는 근거가 없는 한 사후적인 사법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조속히 확정하고 현장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책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스포츠법의 근간을 이루는 이 원칙은 지난 파리 올림픽에서도 명확히 확인되었다. 수구 경기에서의 득점 취소 및 퇴장 판정, 카누 슬라럼 경기에서의 감점 판정, 레슬링 선수의 계체 초과 실격 등 현장에서 내려진 판단이 문제된 사건들은 모두 기각되었다. 루마니아 체조 마루 경기 사건에서는 보다 정교한 판단이 이루어졌다. 현장에서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던 루마니아 선수가 판정에 대해 불복한 부분은 특별중재재판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면에 현장에서 이의신청 기한인 1분을 4초 초과해 제기된 미국 선수의 이의신청은 절차 위반으로 무효가 되었고, 그 결과 미국 선수의 최초 점수가 복원되면서 루마니아 선수가 3위에 올라 동메달을 획득했다.
스포츠의 공정을 지키는 사람들
올림픽 경기장 안에서는 화려한 기록과 메달이 주목받는다. 그 이면에는 스포츠의 핵심 가치인 공정을 수호하기 위해 경기의 속도에 맞춰 24시간 쉼 없이 달리는 특별한 법정이 존재한다. 스포츠 사법 정의의 현장에는 한국인 전문가들의 발자취도 깊게 새겨져 있다. 과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평창 올림픽에서 특별중재판정부 중재인으로 활동하며 길을 닦아온 한국인 변호사에 이어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에서는 국내 법학 교수가 중재인으로 선임되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한국 스포츠 법조계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공정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필자 역시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며 스포츠 현장에서 정의를 지키는 법률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도움말: 법무법인 위온 파트너변호사 정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