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또 규제… 전월세금지법, 전세시장 숨통 끊나

부동산 시장에선 ‘전월세 금지법’ 시행으로 전세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 연합뉴스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전월세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무주택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분양받은 아파트를 전세로 돌려 입주 대금을 충당하는 방식이 차단돼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지는 데다, 매물 잠김 현상으로 전세난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세차익을 노린 ‘갭투자’ 등 부동산 투기를 억제한다는 취지이지만 시장에선 서민층의 마지막 주거 사다리마저 사라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9일부터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민간택지에선 분양가격이 인근 지역 주택매매 가격의 80% 미만인 아파트는 3년, 인근 매매가의 80% 이상·100% 미만인 아파트는 2년의 의무거주 기간이 부여된다.

 

공공택지의 경우 민간이 짓는 아파트라도 분양가가 인근 지역 가격의 80% 미만이면 5년, 80% 이상·100% 미만이면 3년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집주인에겐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집주인들이 입주 시 전·월세를 놓지 못하기 때문에 ‘전월세 금지법’으로 불린다.

 

시장에선 개정안이 시행되면 서민 실수요자들의 새 아파트 분양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는 청약 당첨 시 입주에 필요한 현금이 부족하면 아파트를 먼저 전세로 돌린 뒤 세입자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받아 분양 대금을 충당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분양받은 아파트에 의무적으로 2~5년 거주해야 되므로 자금 동원 능력이 부족한 경우 신축 아파트 분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신축 아파트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최대 90% 수준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편까지 더해져 내 집 마련에 필요한 부담이 급증하게 됐다.

 

직장인 권모 씨(33)는 “앞으로 ‘흙수저’는 청약을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것인가”라며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내가 분양받은 집을 내 마음대로 하지도 못한다는 게 황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세 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세가격지수는 이미 지난주까지 84주 연속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잔금을 전세금으로 충당하는 수분양자들을 사전에 차단하면 전세 물량이 급감, 전세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전망이다.

 

전·월세는 신축 분양 아파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2~5년간 거주하게 되면 전·월세 물량이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보통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전·월세 물량이 대거 풀리면서 공급 과잉 상태가 돼 임대차 시장이 안정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정부의 조치로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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