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 허물어진 금융권 ‘벽’ …경계융화 ‘금융 빅블러(Big Blur)’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비즈=권영준 기자] “은행은 예금·대출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고, 카드사는 결제만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이 불가능하다. 보험사도 보험만으로 생존할 수 없다”

 

플랫폼 중심의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은행, 증권, 카드, 보험 등 각 업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금융 빅블러(Big Blur)’가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빅블러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뒤섞이는 경계융화 현상을 말한다.

 

여기에 빅테크와 핀테크까지 가세하면서 금융권 내 경쟁은 치열함은 넘어 더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국내외 주식을 거래할 수도 있고, 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다. 저축은행 앱에서는 아파트나 중고 자동차의 시세를 확인할 수도 있고, 핀테크 플랫폼에서는 소비자 본인 명의의 금융 계좌를 모두 조회하고, 대출 내역 등을 종합해 전체적인 자산관리를 할 수 있다.

 

여기에 마이데이터 시대가 열리면서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수집하고, 정밀하게 분석해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데이터 확보가 시급한 현안이 되면서 업종을 넘나드는  전략적 제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종 결합으로 채널 확대… 전략적 업무 제휴 급증

 

금융 빅블러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융권은 이업종간 전략적 업무 제휴를 통한 채널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유통, 게임, 헬스케어,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비금융 산업 분야 기업과 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기업은 비금융 산업 분야이지만, 금융 거래와 직접적으로 닿아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종 결합은 유통업체와의 제휴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CU편의점을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업무 제휴에 나섰다. 가맹점주를 위해 신용보증재단 대출 대행서비스 제공하고, 상생협력펀드를 운용할 예정이다. 또한 상호 공동마케팅에도 나선다. NH농협은 전자상거래 기업인 11번가와 손잡았다. 농협의 금융데이터와 11번가의 유통 데이터를 결합한 신용평가(CB) 모델을 구축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한 금융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 ‘신사업’ 갈증 카드사, 업무 제휴에 가장 ‘적극적’

 

이업종간 업종 교류가 가장 활발한 곳이 카드업계다. 대부분의 카드사는 온라인 쇼핑몰 등 언택트 거래 영역에 있는 기업과 손잡고 할인이나 캐시백 혜택을 담은 카드를 출시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지난 4일 ‘KB국민 톡톡 위드(with) 카드’를 통해 온라인 가맹점 간편결제, 배달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등의 혜택을 담았다. 하나카드 역시 롯데멤버스와 업무 제휴를 통해 제휴 가맹점에서 결제 이용 시 L.point가 적립되는 혜택을 제공한다.

 

현대카드의 경우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출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배달의 민족, 스타벅스, 대한항공, 현대·기아자동차, GS칼텍스, SSG.COM, 이마트, 코스트코 등과 제휴를 맺었으며, 네이버와도 손을 잡을 예정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기업 자체 브랜드 카드를 발급해 고객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들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색 업무 제휴… 틈새시장을 선점하라

 

신한은행은 서울옥션블루와 디지털 자산 공동 사업 추진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서울옥션블루는 한국 미술 경매 시장의 대표기업인 서울옥션의 관계사이다. 신한은행은 이번 업무 협약으로 미술품과 같은 고가의 실물 자산을 디지털 지분으로 분할해 판매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상품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포스코건설과 손잡았다. 은행과 건설사의 만남은 색다르게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ESG(환경·환경·지배구조)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은행은 포스코건설이 수행하는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에너지 등 ESG 관련 건설사업에 지급보증과 금융을 지원한다. 포스코건설은 ESG 사업에서 활용 가능한 여유 자금 중 일부를 ESG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윈윈 전략’을 구상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전까지 금융권역 안에서 편리성, 접근성을 높이는 서비스 개선 차원에서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금융권에 거세게 불어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 Digital Transformation)에 따라 업권은 물론 업종의 벽까지 허물어 지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 고객을 확보하는 ‘선점’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중심 ‘빅블러’ 가속화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금융사들은 ‘뭐라도 시도해보자’는 분위기”라며 “이미 구축된 기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 확대·발전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금융권의 이종 결합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 고객의 운동은 물론 금연, 다이어트까지 관리하는 헬스케어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보험 상품 판매로는 경쟁력이 없다”며 “이에 건강검진이 가능한 병원은 물론 다이어트 식품업체, 프렌차이즈 피트니스 센터 등과 협약도 구상 중이다. 이처럼 향후 금융사의 이종 기업과의 제휴는 무궁무진하게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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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IT부문 관계자는 “모바일 앱이 발전하면서 ‘플랫폼 비즈니스’가 산업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휴대폰만 있으면 금융 거래는 물론 전 산업 분야의 판매, 중계, 구매가 가능해졌다”며 “금융사는 전 산업 분야에 전방위로 펼쳐있는 ‘금융 소비자’를 플랫폼을 통해 끌어모으는 작업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young070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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