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억눌린 소비, '명품 구매'로 푼다

사진=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고객들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세계비즈=김대한 기자] 서울 구로구에 거주 중인 A씨(29)는 최근 고가의 명품 드라이기를 구매했다. 기존 드라이기와 특별한 차이는 없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A씨는 “야외 활동이 조금씩 늘면서 머리를 잘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드라이기를 스스로한테 선물하자는 생각이었다”며 “(코로나로) 답답한 데 풀 때는 없어 그동안 쌓인 여유 자금으로 질러봤다”고 구매 이유를 밝혔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1년 넘게 움츠렸던 소비가 최근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명품 소비는 물론 야외 활동과 관련된 매출이 전반적으로 급증,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가 이곳저곳에서 발생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3사의 3·1절 연휴 사흘간 매출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업계는 억눌렸던 소비가 보복하듯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인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플렉스’ MZ세대, 보복소비 경향 뚜렷.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성향이 강한 MZ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의 경우 보복소비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MZ세대는 SNS를 통한 ‘플렉스 문화’를 가지고 있다. 플렉스는 ‘과시하다’, ‘자랑하다’는 뜻으로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등 명품, 여행 등 자기 표현성 소비를 공유한다. 코로나19로 표현이 제한되는 것과 맞물리며 보복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소외된 MZ세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명품 구매에 열중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 이후 더 젊은 세대가 명품 소비에 열중하는 것은 집도 없는데 명품이라도 갖겠다는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실제 데이터로도 이런 젊은층의 플렉스 심리가 잘 보인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사람인’이 20∼30대 30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52.1%가 플렉스 소비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인 이유는 ‘자기만족이 중요해서’라는 답변이 52.6%(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즐기는 것도 다 때가 있어서’(43.2%), ‘스트레스 해소에 좋을 것 같아서’(34.8%),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32.2%), ‘삶에 자극이 되어서’(22.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멋있어 보여서’라는 답변도 7.3%에 육박했다.

 

▲나를 위한 보상… 명품으로 ‘보상소비’.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중저가 브랜드에 대한 수요는 줄고, 명품과 같은 소비가 증가한다. 일명 소비의 역설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다.

 

실제 전체적으로 고르게 백화점 매출이 늘어난 가운데 명품 신장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보복 소비가 폭발하면서 지난 5일과 6일 현대백화점 매출은 2019년 3월 첫 주 금·토요일 매출보다 15%가 더 많았다. 롯데 백화점의 매출도 2020년 3월 첫 주말(6~7일)에 비해 82%, 2019년 동기(8~9일)에 비해서도 6% 증가했다. 특히 2019년과 비교했을 때 화장품(25%), 해외 명품(17%), 아동(10%) 품목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업계는 해외여행이 막히며 면세를 이용하지 못하는 대신, 국내에서 명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년간 소비 욕구가 억눌렀던 중산층들이 그동안 외출 자제로 생긴 여유자금으로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간 코로나19로 억눌린 소비 욕구가 명품 등으로 분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백화점 업계가 지난해 부진을 상쇄하고 실적이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나를 위한 ‘보상심리’로 보인다. 소비량 자체를 늘릴 수 없지만, 여태까지 고생하며 힘들 게 사회 활동한 자신을 위해 ‘이 정도 하나는 소비할 수 있다’는 심리로 해석된다”며 “중고 시장의 활성화도 명품 소비를 이끌었다. 명품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가치가 계속 오를 수 있다. 호용을 다해도 활성화된 중고 마켓을 통해 처분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kimkor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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