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훔쳐쓰고 돈세탁까지…전 세계 ‘불법채굴’과의 전쟁

세계에 통용되며 편리성이 높은 특성에 가상화폐가 국경 간 자금 세탁에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비즈=주형연 기자] 가상화폐 불법 채굴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이 불법채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무단으로 송전·전기료를 탈루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데다 채굴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채굴은 고성능 컴퓨터로 복잡한 수학 연산을 해결해 가상화폐 이용자간 거래 내역을 정리하고 그 대가로 가상화폐를 받는 것을 일컫는다. 현재 석탄 에너지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중국에서 채굴 작업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고 있다. 채굴이 가능한 코인 수는 약 2100만개로 알려져 있다. 이중에서 올해 6월 기준 1800만여개가 채굴됐다. 

 

◆ 24시간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법 채굴 

 

최근 주요 도시에서 정전이 빈발한 이란이 전력 소비가 심한 암호화폐 채굴을 향후 4개월간 금지하기로 했다. 이란의 비트코인 채굴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5%에서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NBC에 따르면 영국 경찰이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대마 재배 농장으로 알고 기습단속에 나섰다가 비크코인 불법 채굴 현장을 적발, 불법 채굴에 사용된 약 100대에 달하는 컴퓨터를 압수했다. 이 비트코인 채굴 시설은 주변 전력망에서 전기를 훔쳐 쓰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 전기실에서 일하는 30대 직원 A씨는 컴퓨터 본체에 그래픽 카드 공기 순환기까지 갖춘 채굴기를 통해 60여만원어치의 이더리움을 채굴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연결해 인터넷을 사용했고, 밤새 채굴기를 돌리는데 들어간 전기비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전기 담당 직원들만 주로 오는 곳인 데다 내부 CCTV까지 없어 A씨의 채굴 작업을 누구도 알아낼 수 없었다.

 

불법 채굴 외에 가상화폐를 이용한 사기 피해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 공안은 최근 가상화폐를 이용해 돈세탁을 한 1100여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1.5~5%의 수수료를 받고 돈세탁을 맡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가상화폐 사기가 들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자료를 인용, 작년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가상화폐 사기로 인한 소비자 피해 금액이 약 8200만 달러(약 912억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피해 금액이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관련 규제 미비와 디지털 통화의 익명성이 사기꾼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국의 채굴업체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는데, 이들이 미국 텍사스로 몰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CNBC가 보도했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전기료가 가장 싸다. 또 2019년 현재 전력의 20%가 풍력에서 나오는 등 미국 재생에너지 산업의 메카다.

 

암호화폐거래소 제미니의 보안 엔지니어였던 브랜든 아바나기는 “애벗 주지사가 대표적인 친 비트코인 인사여서 향후 수개월 동안 많은 채굴업체들이 텍사스에 둥지를 틀 것”이라며 “텍사스의 전기료는 미국에서 가장 저렴할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쌀 것이다. 채굴회사를 시작하는 것도 쉽다. 초기자본만 투자하면 곧바로 비트코인 채굴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불법 채굴 단속 강화

 

불법 채굴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중국이 최근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나섰다. 지난달에는 금융 관련 3개 단체가 가상화폐 관련 서비스 제공을 금지했고, 중국 국무원은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채굴 및 거래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결제 업무 자율 규제 기관인 중국결제청산협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익명성이 있고 세계에 통용되며 편리성이 높다는 특성 때문에 가상화폐가 국경 간 자금 세탁의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단속 강화 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가상화폐 채굴 주요 기지 가운데 하나인 서남부 쓰촨성도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채굴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가에너지국 쓰촨성 관리감독 판공실은 가상화폐 채굴 관련 상황을 검토하기 위한 좌담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 중국 북부 네이멍구 자치구가 가상화폐 채굴에 철퇴를 내린 가운데 일부 전문가는 중국이 전면적인 채굴 금지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네이멍구는 지난달 가상화폐 채굴과 관련된 모든 기업과 개인을 블랙리스트(신용 불량 명단)에 올리도록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한국전력이 가상화폐 불법 채굴 단속에 나섰다. 일반용 전기보다 값싼 산업·농사용 전기를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하다 적발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지난 11일 “농사용·산업용 고객 가운데 전기사용이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며 “이달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2018년 초에도 현장 조사를 해 산업 또는 농사용으로 전기를 쓰겠다고 한전과 계약하고 실제로는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38개 업체를 적발하고, 이들에 5억원 가량의 위약금을 추징한 바 있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 가상화폐 가치가 상승하면서 계약을 위반한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적발되면 부당으로 거둔 이익금에 추징금을 더해 위약금을 청구하고, 위약금을 내지 않으면 단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j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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